볼이 홀쭉한 80대 노 장로의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지만 두 눈만은 반짝였다. 그 안에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세계에 도달한 탐험가의 환희가 가득했다. 최근 ‘성경연대기와 절기’ 영문판(활재)을 펴낸 반성호(82) 강남성은교회 원로장로 이야기다. 반 장로의 신간 출간을 기념하는 행사가 16일 서울시 강남구 한 한식당에서 열렸다.
‘성경연대기와 절기’는 최초의 사람인 아담부터 예수에 이르기까지 성경 속 사건의 발생 연도와 날짜 요일을 추적하는 책이다. 2017년 반 장로가 펴낸 ‘성경연대기와 절기’에서 일부 내용이 바뀌긴 했지만, 전체 흐름은 같다. 한글책을 영어로 바꾸기 위해 80대 저자는 영어 공부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했다. 30대 중반에 예수를 믿기로 하면서 ‘성경을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성경 통독을 시작한 것이 성경연대기 연구의 시작이었다.
반 장로는 “처음 통독을 할 때 요점 정리를 했는데 창세기를 읽으니 히브리 민족의 족보 1권이 만들어졌고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를 읽으니 40년 출애굽 여정과 8년 가나안 정복 여정이 만들어졌다”며 “열왕기상하와 역대상하를 읽으니 남북 왕들 연대기가, 신약을 읽으니 예수 생애가 만들어졌다”고 회고했다. 두 번째 통독 때는 요점과 정리를 병행하며 성경을 읽었다고 했다. 반 장로는 “여러 차례 병행 통독을 통해 성경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믿음도 자랐다”고 했다.
문제가 된 건 요점 정리한 남북 왕들의 연대기가 잘 맞지 않으면서부터다. 예수 생애에 대해 연대가 모호한 점도 반 장로를 당황케 했다. 그는 “내가 요점 정리를 잘못한 것인가 생각하며 다시 병행 통독을 여러 번 했지만, 결과가 같았다”며 “성경은 오류가 없다는데 왜 연대기가 잘 맞지 않을까 궁금증이 커졌다”고 말했다.
성경 주석과 학자들의 연대기를 읽어봐도 책마다 연대기가 달랐던 터라 정확한 성경연대기를 스스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자신이 작성한 요점정리와 성경주석들을 비교 검토하며 연구를 시작했다. 그때가 1977년이었다.
서울대 약대를 나와 약사로 일하던 반 장로는 약국을 운영하는 틈틈이 연구에 몰두했다. 달력 연구에만 20년을 매달렸다. 이스라엘의 달력인 히브리력과 히브리종교력, 그레고리안력과 줄리안력 등을 분석하며 6000년치의 달력을 손수 그렸다. 성경에 기록된 안실일과 절기와 여러 사건의 연대를 복원한 히브리력 또는 히브리종교력을 사용해 BC 연 월 요일로 환산했다. 그야말로 지난한 작업이었다.
20년이 지난 1997년 연도만 표기한 구약연대기를 완성했다, 2013년에는 ‘성경연대기 아담-예수’(밀알서원)를 2017년에는 절기 관련 내용을 추가하여 ‘성경연대기와 절기’(밀알서원)를 펴냈다.
영문판을 낸 이유는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드문 성경연대기 연구 업적을 더 많은 연구가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감신대 교수를 지낸 이성민 강남성은교회 목사는 “성경연대기를 정확하게 복원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 신학계에는 지금까지 이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연구한 학자가 거의 없다”며 “해외에서도 성경연대기를 파헤치고자 하는 학자가 나온다면 이 책이 중요한 발자취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성경학자인 윤철원 서울신대 부총장은 “성경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가는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위치를 강력하게 논증하는 연구”라며 “성서학에서 흔히 다뤄지지 않는 분야를 반 장로가 40여년 집중 연구를 통해 연구의 효시를 이뤘다. 학자들을 반성하게 하는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글·사진=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