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사기대출 문제로 약 5000억 원에 달하는 벌금을 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두 아들은 트럼프그룹 경영권도 박탈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판결로 보유하고 있던 현금성 자산이 모두 바닥날 위기에 처했다. 사법 리스크가 본격 시작되는 시점에서 재정 위기가 가중돼 최대 난관에 봉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뉴욕 맨해튼지방법원의 아서 엔고론 판사는 16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과 트럼프 그룹에 대한 사기대출 의혹 재판에서 이들이 은행 대출 때 자산을 허위로 부풀려 부당이득을 취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3억6400만 달러(4800억 원)의 벌금을 내라고 판결했다. 여기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와 차남 에릭이 각각 내야 할 400만 달러, 트럼프 회계사로 지목된 앨런 와이셀버그가 내야 할 100만 달러 벌금이 포함됐다.
엔고론 판사는 벌금에 대한 이자도 함께 내야 한다고 명령했는데, 법무부는 이자를 포함한 총액이 4억5000만 달러 정도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엔고론 판사는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3년)과 두 아들(각 2년)이 뉴욕주 내 사업체에서 고위직을 맡을 수 없도록 금지해 사실상 경영권도 박탈했다.
앞서 레티샤 제임스 검찰총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뉴욕의 트럼프타워 가치를 2억 달러 이상 뻥튀기하는 등 10년 동안 매년 36억 달러가량을 부풀렸다고 기소했다. 제임스 검찰총장은 “누구도 법 위에 설 수 없다는 게 증명됐다. 정의가 실현됐다”며 “엄청난 승리”라고 환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엉터리 판결이다. 선거 개입이자 마녀사냥”이라고 비난했다. 또 제임스 검찰총장에 대해 “트럼프를 잡는 데 혈안인 부패한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은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최대 일격’이라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 트럼프 전 대통령 일가의 순 자산은 26억~30억 달러로 평가돼 즉각적인 파산 위험은 낮다. 하지만 자산 대부분이 호텔이나 골프장 등 부동산에 묶여 있고, 현금성 자산은 약 4억 달러가량에 불과해 벌금을 물게 되면 현금 자산은 바닥나게 된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난 후 쌓아둔 현금, 주식, 채권을 소멸시킬 수 있는 액수”라며 “트럼프 측은 30일 이내에 자금을 마련하거나 외부 기업을 설득해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작가 E. 진 캐럴 명예훼손 재판에서 받은 8330만 달러 배상금도 내야 해 일부 자산 매각은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자까지 포함한 총액이 5억 달러를 넘어서 트럼프 전 대통령 일가 자산은 16~19%가량 쪼그라들게 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즉각 항소 뜻을 밝혔지만, 이 경우 판결 금액을 공탁해야 해 부담은 줄어들지 않는다. 특히 엔고론 판사가 뉴욕주에 등록된 은행에 3년간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사업체 등에 대출하지 못하도록 결정, 현금 조달 능력도 제약된 상태다.
경영권 박탈 역시 치명적이다. 엔고론 판사는 트럼프 부자의 경영권을 최대 3년간 금지하고 대신 독립 감시인인 바버라 존스 전 연방판사에게 트럼프그룹에 대한 ‘강화된 감시 권한’을 부여했다. 또 엔고론 판사는 회사의 재무 보고를 감독한 독립적인 준법감시인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트럼프 일가를 그룹 경영과 수년간 분리한 셈이다.
NYT는 “트럼프의 재정, 가족 사업, 자존심에 전례 없는 위협이 될 수 있는 결정”이라며 “트럼프는 파산하지 않고 트럼프 그룹도 폐업하지는 않겠지만, 몇 년 동안 업무 마비를 초래할 수 있다. 합법적인 비즈니스 의사 결정 능력을 동결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은 17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스니커즈 쇼 ‘스니커콘’에 참석해 자신의 로고를 새긴 ‘네버 서렌더 하이-톱 스니커즈’(NEVER SURRENDER HIGH-TOP SNEAKER’ 운동화 출시를 홍보했다. 금장의 스티커즈는 미국 성조기와 함께 트럼프를 상징하는 알파벳 ‘T’ 문양이 새겨져 있고, 가격은 한 켤레당 399달러다. AP통신은 트럼프 스니커즈 온라인 판매 회사가 2023년 재산공개 때 자신 소유라고 밝힌 ‘CIC Ventures LLC’라고 설명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