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공급과잉과 업황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서로 다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롯데케미칼과 LG화학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 및 신사업 진출을 감행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금호석유화학은 선제적으로 부채를 줄이고, 현금 보유량을 확보하는 등 안정성을 추구하고 있다.
롯데케미칼과 LG화학은 미래 먹거리 확보에 사활을 걸고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범용 제품 시장에서의 중국 자급률 증가, 경기 침체로 인한 전방 수요 부진, 공급과잉 등으로 어려운 시장 상황에 사업 다각화로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2022년 수소, 이차전지 소재 및 재활용을 3대 미래 사업으로 삼겠다며 ‘2030 비전’을 내놓은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동박 업체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해 이차전지 사업 추진을 본격화했다. LG화학은 지난해 친환경 소재, 전지 소재, 신약 개발 등을 3대 신성장동력으로 정하고 내년까지 총 1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3대 신사업의 매출 비중을 2030년까지 57%(40조원)까지 확대하는 게 목표다.
M&A나 투자금 마련 과정에서 두 회사의 차입금 규모는 늘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의 지난해 3분기 차입금 규모는 2021년 3분기보다 174.6%, LG화학은 56.3% 증가했다. 두 회사의 지난해 3분기 차입금 의존도는 각각 29.2%와 28.3%였다. 차입금 의존도는 자산 대비 꾼 돈의 비중이다. 시장에서는 이 비율이 40% 수준이면 재무 위험 수준으로 해석한다.
반면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3분기 차입금 총액이 8363억원으로 2021년 3분기와 비교해 20.2% 줄었다. 차입금 의존도 또한 10.5%로 2년간 내림세다. 금호석유화학은 과거부터 보수적인 경영 기조를 유지해왔다. 신사업 투자 규모도 경쟁 기업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2008년 금융위기로 형인 박삼구 회장이 경영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해체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돌다리도 100번 두들기고 건넌다’는 경영 철학을 굳힌 것으로 전해진다.
2021년 코로나19 특수로 영업이익이 크게 늘었을 때도 번 돈의 상당 부분을 부채 비율을 낮추는 데 썼다. 금호석유화학은 위생장갑 원료가 되는 NB라텍스의 시황 강세에 힘입어 2021년 영업이익 2조4068억원, 영업이익률 28.4%라는 실적을 낸 바 있다. 2019년 73%였던 부채 비율은 지난해 3분기 39%까지 떨어졌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공급과잉 상황이 영원히 지속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수급이 다시 정상화되는 때를 기다리며 버티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며 “다져놓은 본업 경쟁력 및 재무 체력으로 어려운 시기를 잘 지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