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 전술’에 928일 끈 충북동지회 사건…전원 ‘징역 12년’

입력 2024-02-16 16:32 수정 2024-02-16 21:13
북한 지령하에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F-35A 도입 반대 활동을 했다는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를 받는 충북 청주 지역 활동가 4명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지난 2021년 8월2일 청주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간첩활동을 벌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충북동지회’ 피고인들이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법관 기피 신청 등 각종 ‘재판 지연’ 논란 속에 이번 사건은 피고인들 구속 이후 928일이 지나서야 겨우 1심이 마무리됐다.

청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김승주)는 16일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단체 결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충북동지회 위원장 손모(50)씨 등 3명에게 각각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도주 우려가 있다”며 보석으로 풀려났던 3인을 모두 법정 구속했다.

손씨 등은 2017년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아 이적단체 ‘자주통일 충북동지회’를 결성한 뒤 미화 2만 달러 상당의 공작금을 수수하고, 4년간 국가기밀 탐지, 국내정세 수집 등 각종 안보 위해 행위를 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위원장, 고문, 부위원장, 연락 담당 등으로 역할을 나눠 공작원과 지령문·보고문 수십건을 암호화 파일 형태로 주고받으면서 충북지역 정치인과 노동·시민단체 인사를 포섭하기 위한 활동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범행은 대한민국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실질적으로 저해할 위험이 있는 범죄”라며 “장기간 범행을 계획하고 범행 방법도 은밀해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질타했다.

이어 “피고인들의 수집한 정보의 가치가 크지 않은 점, 동조자들을 포섭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한 점 등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국가기밀을 탐지해 수집한 혐의로 검찰이 기소한 형법상 간첩죄(98조), 국가보안법 찬양·고무 부분 등에 대해서는 북한에 보고한 정보가 국가기밀로 보기는 어렵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보법이 남용된 적이 있고 그 위험은 현재도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기밀이라든지 표현의 자유 부분까지 무리하게 끌어들여 처벌할 이유는 없다”며 “이는 법원이 국보법이 부당하게 확대 해석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고인들은 이날 선고 전 취재진 앞에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국정원이 수십년간 불법 사찰해서 조작한 것”이라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 대부분을 인정했다.

세간에 ‘청주 간첩단 사건’으로 불리는 이번 재판은 2021년 10월 첫 공판이 열린 지 무려 2년 4개월 만에서야 1심이 마무리됐다.

재판 과정에서 손씨 등이 4차례에 걸쳐 법관 기피 신청을 하면서 재판이 9개월 간 중지되기도 했다.

이들은 또 1심 선고를 앞둔 지난 14일 검찰의 증거 조작으로 간첩으로 몰리고 있다며 돌연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에 ‘정치 망명’을 요청하기도 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