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에게 마지막까지 책임감은 없었다. 그는 손흥민, 이강인 때문에 아시안컵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는 핑계까지 댔다.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는 더는 그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마지막 판단은 이제 그를 감독으로 앉힌 정몽규 회장에게 넘어갔다.
15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2024 제1차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브리핑에 나선 황보관 기술본부장은 “여러 이유로 클린스만 감독이 더 이상 대표팀 국가대표 감독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교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전반적으로 모아졌다”고 밝혔다.
황 본부장에 따르면, 위원들은 클린스만 감독의 전술 역량을 비롯해 선수 선발 과정, 선수단 관리 등을 두루 문제 삼았다. 근무 태도에 대한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황 본부장은 “(클린스만 감독이) 여러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국민 신뢰를 잃었고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평가도 있었다”며 “대표팀 감독의 근무 태도가 이슈가 된 것 자체가 문제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초부터 A매치 5경기 무승(3무 2패)을 기록하며 1991년 전임 감독제 도입 후 역대 최장기간 무승 사령탑이라는 오명을 썼다. 이 기간 한국에 머문 기간은 67일에 불과하다. 대표팀 선발 명단을 발표할 때도 기자회견 없이 보도자료로만 갈음하거나 대표팀과 상관없는 해외 방송에 출연해 근무 태도가 불성실하다는 비판이 잦았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날 화상으로 회의에 참석해 위원들의 지적을 반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위원은 “클린스만은 회의 내내 이강인, 손흥민 때문에 경기력이 안 좋았다는 식으로 변명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황 본부장은 “선수단 불화 때문에 (요르단전) 경기력이 안 좋았다는 식으로 말한 것은 맞다”고 밝혔다.
이제 남은 건 정 회장의 결정이다. 전력강화위원회는 자문기구일뿐 감독 해임 권한은 없다. 이날 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정 회장이 클린스만 감독 해임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정 회장은 아시안컵 4강 탈락 이후 두문불출하며 사실상 자취를 감춘 상태다.
대표팀 핵심 선수인 손흥민과 이강인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고, 다음 달 2026 북중미월드컵 예선전이 있다는 점에서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감독 경질로 방향이 맞춰진 만큼 당분간은 대행 체제로 지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사령탑 자리를 오랜 기간 공백으로 둘 순 없는 노릇이다.
대한축구협회의 무책임한 행보에 팬들 사이에선 A매치 보이콧 선언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날 회관 앞에서 클린스만 감독과 정 회장의 퇴진 시위에 참여한 노상조(37)씨는 “왜 지금 사태를 선수들한테 덤터기를 씌우는지 모르겠다”며 “3월 북중미월드컵 예선 때 선수들이 정상적으로 소집되더라도 감독이 바뀌지 않는 한 경기 보이콧에 돌입하겠다”고 말했다.
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