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르게 늘어난 국가채무가 어느새 1100조원을 돌파했다.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규모다. 이론적으로 한국은 GDP의 3배에 육박하는 채무를 버텨낼 수 있는 국가다. 하지만 정상적인 경제 운용이 가능한 실질적 채무 한도는 이보다 훨씬 낮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고령화를 고려한 실제 여력은 더더욱 부족하다. 채무 규모보다 채무 증가 속도에 초점을 맞춰 지출 규모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채무, 50년 뒤엔 GDP 2배
1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한국의 중앙정부 채무(D1)는 지난해 11월 말 기준 1109조5000억원으로 2022년 말에 비해 76조원 늘었다. 정부는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을 통해 국가채무가 올해 연말까지 GDP의 51.0% 수준인 1195조8000억원으로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흔히 국제 비교에 활용하는 일반정부 부채(D2)는 2022년 말 기준 1157조2000억원으로 이미 GDP의 53%를 넘겼다.
채무가 많아 보이지만 수십년 후의 미래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재정준칙 도입 없이 현행 재정 정책을 유지할 경우 2040년이면 국가채무가 2939조1000억원에 이르러 연간 GDP 규모를 추월한다고 전망했다. 부채 증가 속도는 이후에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예정처는 2070년에는 국가채무가 GDP의 192.6% 수준인 7137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봤다.
채무 한계는 GDP의 3배? 60%?
국가채무가 어느 수준을 넘으면 본격적으로 위험해지는지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다르다. 우선 정부가 앞으로 감당할 수 있는 국가채무 증가분을 나타내는 ‘재정여력’ 개념이 있다. 허진욱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재정여력 추정을 통한 한국 재정의 금융위기 대응 능력 평가’ 논문에서 한국의 재정여력이 GDP의 271.2%라고 추산했다. 국가채무가 GDP의 3배를 넘나드는 경우에도 증세를 통해 국가 부도 위기를 면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해외 기관의 평가도 비슷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0년 한국의 재정여력이 GDP의 203%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무디스도 2014년 연구에서 한국의 재정여력을 GDP의 241%로 추산했다.
다만 재정여력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수치에 불과하다. 경제를 정상적으로 운용할 수 없을 정도의 극단적 증세를 가정하기 때문이다. 허 교수는 재정여력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동소득세율과 자본소득세율을 각각 25% 포인트, 12% 포인트 인상해야 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민간소비가 36.4%, GDP가 34.6% 감소하는 심각한 경기 불황이 발생한다고 예측했다. 국가채무가 GDP의 2배 이상 늘어날 경우 국가 부도는 면할 수 있어도 경제는 몰락을 면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정부와 해외 기관은 이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위험 수위’를 설정한다. 기재부가 추진하는 재정준칙은 GDP의 60%를 대응 기준선으로 잡고 있다. 국가채무가 GDP의 60%를 넘기면 긴축 강도를 높여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GDP의 2% 이내로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 재정준칙의 요지다. 유럽 주요국이 설정하고 있는 국가채무 기준선 역시 60%다. 85%라는 숫자가 등장한 적도 있다. IMF는 지난 2017년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선진국 기준으로 국가채무가 GDP의 85%를 넘어서면 위험한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비기축통화국인 한국은 부채 확대 시의 국가신용도 하락과 국채금리 상승 등을 고려해 더 낮은 기준선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규모보다 증가 속도가 문제
일각에선 부채의 성질을 고려하면 한국의 상황은 여타 선진국보다 훨씬 건전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한국의 국가채무 중 실제 재정에 부담을 안기는 순 부채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발행과 동시에 외화자산이 발생해 유사시 그대로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달러 매입용 국채가 대표적이다. 민간연구기관인 나라살림연구소는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D2) 비율은 2022년 기준 53.8%로 주요 7개국(G7) 평균인 128.0%보다 낮고, 순 부채 비율은 23.4%에 불과해 G7(95.4%)과의 격차가 크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증가 속도다. IMF는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D2) 비율이 2028년이면 57.9%에 이르러 비기축통화국 중 두 번째로 높아진다고 전망했다. 실질적인 나라 살림을 나타내는 관리재정수지는 정부의 ‘건전재정’ 선언에도 불구하고 적자 규모가 4년 연속으로 GDP의 3%를 넘어설 전망이다. 극심한 저출산·고령화의 매년 늘어나는 의무지출 비용도 빚 증가세에 기름을 붓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우선 재량 지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연금개혁을 비롯한 재정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강구 KDI 연구위원은 “정부가 지난해 추경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건전재정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하고, 어렵더라도 빠르게 재정·연금을 개혁해 의무지출을 줄여야만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