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과정에서 회삿돈 47억원을 횡령하고 분식회계 은폐를 위한 증거인멸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태한 전 대표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당합병‧분식회계 재판에서 인정된 압수 증거의 위법성이 이번 재판에서도 무죄 판단 근거가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재판장 박정제)는 14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기소된 김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기소된 지 약 3년 4개월여만에 나온 판결이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안중현 전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부사장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다만, 김동중 부사장은 증거인멸교사 혐의가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횡령 혐의와 관련해 김 전 대표와 김 부사장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2019년 5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18TB 백업 서버 등의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돼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증거는 같은 재판부가 지난 5일 선고한 이 회장 재판에도 제출됐으나 마찬가지로 절차적 위법성을 이유로 증거 능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18TB 용량의 백업 서버와 삼성바이오에피스 NAS(네트워크 결합 스토리지) 서버 등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전자정보 선별 등 적법절차를 거쳤다는 것을 검사가 입증하지 못해 모두 위법 수집 증거에 해당한다”며 “해당 증거에서 횡령 혐의에 대한 전자정보를 압수한 건 영장에 기재된 혐의사실과도 관련이 없어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횡령의 주된 증거를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고 검사 제출 증거만으로는 혐의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보상 과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긴 하나 다른 등기임원에게도 차액 보상으로 형평성을 맞추려고 한 점 등을 보면 횡령 고의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의 증거인멸교사 혐의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 전 대표가 2018년 5월 회의에서 김 부사장 등과 관련 자료 삭제를 공모했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당시 회의 말미에 자료 삭제 논의가 나왔다는 김 부사장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2018년 6월 보안 점검 등의 과정에서 증거인멸 관련 내용이 김 전 대표에게 보고됐다는 김 부사장 진술과 관련해서도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는 게 일반적인데 김 부사장은 시일이 지날수록 더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다”며 진술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김 부사장의 증거인멸교사 혐의는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부정 의혹 사건에 관한 검찰 수사에 대비해 조직적으로 관련 자료를 삭제하기로 하고 김 부사장도 관련 자료 삭제를 지시했다”며 “직원들이 서버에 저장된 파일과 이메일, 휴대전화 메시지 등 방대한 양의 자료를 삭제하게 해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관련 공소가 제기됐으나 무죄가 선고된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했다”고 했다.
김 전 대표 등은 2016년 11월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당시 이사회 결의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47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우리사주제도에 따라 공모주 대상에서 제외돼 인센티브를 받지 못하게 되자 이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봤다. 또 이 회장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당합병‧분식회계를 숨기기 위해 2018년 5월 18TB 용량 백업 서버를 숨기는 등 증거인멸에 가담했다는 혐의도 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