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태원 참사 당시 인파 위험을 예상한 정보 보고서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이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 징역형이 나온 첫 판결이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배성중)는 14일 증거인멸교사와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교사 혐의로 기소된 박성민 전 부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진호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재판부는 김 전 과장의 지시를 받고 문건을 삭제한 곽영석 전 용산서 정보관에게는 징역 4개월의 선고유예를 판결을 내렸다.
박 전 부장과 김 전 과장은 용산서 정보관이 참사 전 작성한 ‘이태원 핼러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 보고서 및 특정정보요구(SRI) 보고서 3건 등 4건의 정보보고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다수의 젊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고자 거리에 나왔다가 대형 참사로 이어지게 된 상황에서 이를 접한 국민 역시 큰 충격과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며 “이에 국민 안전 책임을 맡은 조직들이 제 역할을 다하였는지 진상 규명을 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데 사회적 요청이 집중됐었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부는 “그러나 정반대로 피고인들은 이 사고와 관련해 정보보고서를 삭제하도록 지시하거나 이를 이행함으로써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의 증거가 인멸되는 결과가 초래됐다”며 “진상규명 및 책임소재 파악에 대한 전국민적 기대를 저버린 채 경찰의 책임을 축소하고 은폐함으로써 실체적 진실 발굴 어렵게 한 데 대해 엄정한 처벌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박 전 부장에 대해서 재판부는 “사고의 원인이나 책임을 파악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책임 소재가 경찰 조직 내로 향할 것을 크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질책했다.
이태원 참사 대응과 관련해 기소된 경찰 간부 등 핵심 피고인에 대해 내려진 첫 판결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골목 인근에 불법 구조물을 설치한 혐의로 기소된 해밀톤호텔 대표 이모(76)씨에게 벌금 800만원이 선고된 바 있다.
이날 판결 직후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번 판결이 이태원 참사 발생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물은 결과는 아니다”면서도 “참사 직전 경찰이 인파 밀집을 예측하고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참사가 일어난 후 도리어 관련 정보를 은폐하기 급급했던 것과 관련해 공직자의 형사 책임을 처음 인정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어 “뒤늦게나마 재판부가 정보보고서 삭제를 지시한 경찰의 형사책임을 인정하고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피고인 박성민에게 실형을 선고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