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의무 이행을 위한 사회복무요원 배치를 3년간 기다리다 결국 소집되지 않아 전시근로역으로 편입된 이중국적자에게 병역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한국 국적 선택을 거부한 행정당국 처분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한·미 이중국적자 30대 A씨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을 상대로 “한국 국적 선택 반려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지난해 11월 A씨 손을 들어줬다.
A씨는 미국에서 살던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과 미국 복수국적자가 됐다. 그는 2017년 병역판정 검사에서 신체등급 4급 판정을 받고 사회복무요원 소집 대상으로 분류됐지만, 사회복무요원 판정된 사람이 실제 필요한 근무인력수보다 많아진 탓에 3년가량을 배치받지 못하고 대기해야 했다.
A씨는 결국 배치받지 못했고 2021년 전시근로역에 편입됐다. 전시근로역은 평시에는 징병 되지 않다가 전시에만 소집돼 군사지원 업무에 투입되는 이들이다. 군 복무와 예비군 훈련이 면제되며 민방위 훈련만 받으면 된다.
A씨는 이듬해 국적법에 따라 한국에서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출입국청에 한국 국적 선택을 신고했다. 국적법은 만 22세 이상 병역 의무가 해소된 복수국적자 남성에 대해 군 복무 종료 후 2년 내 외국국적불행사 서약을 조건으로 한국 국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경우 한국과 미국 복수국적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출입국청은 A씨가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며 거부했다. 전시근로역은 군 복무로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에 A씨는 출입국청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A씨 승소 판결을 했다. A씨가 병역 의무 이행을 위해 모든 절차를 따랐지만, 본인 귀책 사유가 아닌 국가의 병역자원 배분 문제로 복무하지 못한 만큼 이를 일반적인 ‘군 미필’ 사례와 동일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A씨가 병역 의무를 회피하려고 시도하거나 한 바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출입국청 국적업무처리지침은 ‘전시근로역으로 편입된 사례’도 병역 회피 우려가 없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복무를 마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렇게 보지 않으면 병역 의무 이행을 위해 충분한 노력을 했음에도 국적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