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일 해보겠소’ 현역 위협 국힘 법조인 예비후보들

입력 2024-02-11 00:07

4월 10일 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 공천을 신청한 법조인 예비후보가 지난 총선보다 3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권 법조인 출마자 증가는 윤석열 대통령뿐 아니라 여당 대표(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사무총장, 공천관리위원장 등 총선을 지휘할 핵심 인사들이 전부 법조인인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일부 예비후보들은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현역 의원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일보가 10일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3일까지 국민의힘에 22대 총선 공천을 신청한 예비후보자 명단을 분석한 결과, 전·현직 의원을 제외하더라도 최소 66명의 예비후보자가 판사나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 출신인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21대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공천 신청자 중 전·현직 의원을 제외하고 법조인이 44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법조인 출신 공천 신청자는 33.3% 증가했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는 ‘경선 감점’을 적용받는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의 지역구에 검사 출신 도전자들이 줄을 잇는 게 눈에 띈다.

오세인(58) 전 광주고검장은 고향인 강원도 강릉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곳은 마찬가지로 검사 출신인 ‘원조 윤핵관’ 권성동 의원이 4선을 한 곳이다.

국민의힘 공관위는 ‘정치 신인’에 문호를 열겠다며 동일 지역구에서 3선 이상을 한 중진에 대해서는 경선 득표율에 15%를 감점하기로 했다.

정우택 국회부의장 지역구인 충북 청주상당에는 윤갑근(59) 전 대구고검장이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두 사람은 앞서 지난 21대 총선 때도 이 지역구에서 공천을 두고 격돌했지만, 4년 전에는 윤 전 고검장이 정 부의장을 인근 지역구(청주흥덕)로 밀어내고 공천을 따냈다.

하지만 윤 전 고검장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정순 전 의원에 패했다. 정 전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 후 치러진 2022년 보궐선거 경선에서는 정 부의장이 윤 전 고검장을 이기고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5선의 주호영 의원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는 검사 출신의 정상환(59)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이 출마를 준비 중이다. 주 의원은 대구 수성을에서 4선을 한 뒤 지난 총선에서 옆 지역구인 수성갑으로 옮겨 5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 6일 공관위가 같은 ‘자치구’ 내 선거구 이동도 동일 지역구로 간주해 경선득표율 감점을 적용키로 하면서 주 의원 역시 경선 감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최근 당으로부터 경남 김해 출마를 요구받은 조해진 의원 지역구(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에도 지난해 퇴임한 박용호(58) 전 창원지검 마산지청장이 공천 신청을 마쳤다.

여권 텃밭인 대구에서도 법조인과 현역 간 치열한 경합이 예상되는 곳이 있다.

남구청장 출신 임병헌 의원이 현역인 대구 중·남구에는 노승권(58) 전 대구지검장과 도태우(54) 변호사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노 전 지검장은 윤 대통령과 대검 중수부에서 같이 호흡을 맞춘 적이 있고, 도 변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으로 활동했다.

홍석준 의원 현역인 대구 달서갑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유영하(61) 변호사가 출마를 선언했다. 류성걸 의원이 현역인 대구 동갑에도 판사 출신인 임재화(52) 변호사가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현역이 불출마하거나 다른 지역구로 옮긴 지역에도 법조인 예비후보들이 대거 나올 전망이다.

서울로 옮겨 출마하는 하태경 의원 지역구 부산 해운대갑에는 검사 출신인 주진우(48) 전 대통령실 법률비서관과 박지형(50) 해운대구청 자문변호사가 출마를 선언했다.

판사 출신인 황정근(63) 전 국민의힘 윤리위원장도 고향(경북 예천) 출마를 위해 경북 안동·예천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예천을 안동과 분리해 의성·청송·영덕에 합치는 방안에 잠정 합의했는데, 의성·청송·영덕 현역인 김희국 의원은 공천을 신청하지 않았다.

현역인 무소속 황보승희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부산 중·영도에는 검사 출신 박성근(56)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출마한다.

이처럼 국민의힘에서 법조인들의 출마가 도드라진 이면에는 당 요직에 법조인이 많은 것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줬다는 지적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검사 출신인 상황에서 판사 출신인 장동혁 의원과 정영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각각 당 사무총장과 공관위원장을 맡고 있다.

특히 한 위원장은 지난달 ‘당 요직에 법조인이 너무 많다’는 지적에 대해 “입법부는 법률을 만드는 곳이라 법률 전문가가 배제돼야 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법조인 예비후보가 많은 데 대한 정치권 안팎의 평가는 엇갈린다.

비법조인 출신 한 중진 의원은 “법조인 출신이 유능하고 정치권에서 여러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정치권에 법조인이 너무 많아지면 법조인과 다른 직역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균형 잡힌 심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의 이미지가 ‘법조당’처럼 비치는 데 대한 우려 목소리도 일부 제기됐다.

다만 20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정치란 게 결국 법을 만드는 건데 비법조인 출신 국회의원 중 헌법이나 법에 대해 너무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며 “총선에 나서는 법조인이 많은 건 별문제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