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사기죄 형량 높여야”…전세사기 ‘건축왕’ 최고형 15년 선고

입력 2024-02-07 16:51
148억원대 전세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른바 '건축왕'에게 사기죄의 법정최고형이 선고된 7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가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 191명, 피해 금액 148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전세사기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건축왕’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이는 사기죄로 내릴 수 있는 법정 최고형이다.

인천지법 형사1단독 오기두 판사는 7일 사기 등 혐의로 구속된 남모(62)씨의 선고 공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범죄 수익 115억5000만원 추징을 명령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 등 공범 9명에게도 각각 징역 4∼13년을 선고했다.

오 판사는 “피고인들은 사회초년생이나 노인과 같은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범행해 동기나 수법이 매우 불량하다”며 “피해자는 191명, 피해액수는 148억원으로 막대하고 피해자들의 전세보증금은 대출을 받거나 일하면서 모은 전 재산”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남씨는 주택 2708채를 보유하면서 스스로 탐욕에 따라 피해를 준 부분에 큰 죄책감을 져야 한다”며 “사회공동체의 신뢰를 처참하게 무너뜨렸는데도 변명을 하면서 100여명의 피해자가 법정에서 진술하게 하면서 고통을 줬다”고 했다.

법원은 지난해 3월 남씨 기소 이후 결심 공판까지 약 10개월 동안 피해자를 포함해 100명이 넘는 증인들을 신문했다. 그 사이에는 남씨 일당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 4명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오 판사는 “생존 기본 요건인 주거환경을 침탈한 중대 범죄를 저지르면서 20∼30대 청년 4명이 전세사기 범행으로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다”며 “그런데도 국가나 사회가 해결해야 한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재범 우려도 크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전세사기 피해자들로 구성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는 선고 직후 “남씨 일당에게 조직적 사기를 당한 피해자는 수천세대에 이르는데 이들의 형량은 너무 낮다”며 “범죄단체조직죄를 반드시 적용해 법이 허락하는 최고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선고된 징역 15년은 전세 사기범에게 내릴 수 있는 법정 최고 형량이다. 사기죄의 법정형은 징역 10년 이하로 규정하고 있고, 2건 이상의 사기를 저지른 피고인에게는 ‘경합범 가중’ 규정에 따라 최대 2분의 1까지 형을 더할 수 있다.

이날 오 판사는 판결문을 낭독하며 이례적으로 사기죄의 법정최고형 법령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오 판사는 “사기죄에 대해 선고할 수 있는 한도는 징역 15년에 그치고 있다”며 “현행법은 인간 생존의 기본 조건인 주거의 안정을 파괴하고 취약계층의 삶과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사회 신뢰를 무너뜨리는 악질적인 사기 범죄를 예방하는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7일 결심 공판에서 남씨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공범 9명에게는 각각 징역 7∼10년을 선고해달라고 했다.

남씨의 변호인은 선고 공판을 앞두고 “담당 법관으로부터 공정한 판단을 구하기 어렵다”며 법관 기피신청을 했으나 법원은 “적법하고 정당한 절차로 공판이 진행됐는데 재판을 지연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씨 등 일당은 2021년 3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인천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91채의 전세 보증금 148억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들의 전체 혐의 액수는 453억원(563채)이지만 이날 재판에서는 먼저 기소된 148억원대 전세사기 사건만 다뤄졌다. 추가 기소된 나머지 305억원대 전세 사기 재판은 따로 진행 중이다.

남씨는 인천과 경기도 일대에서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2700채를 보유해 건축왕으로 불린 바 있다.

이강민 기자 riv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