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세상에 전하는 온기 한 움큼···“더 못 줘서 부끄러워”

입력 2024-02-04 15:40

인천광역시 계양구에 사는 박연임(71·아래 사진)씨의 하루는 오전 5시에 작은 손수레와 함께 시작된다. 6년 전 수술로 콩팥 하나를 떼어낸 몸이지만 자신보다 더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남편을 병간하기 위해서는 걷기 운동이라도 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폐지를 줍기 시작한 게 어느덧 4년째다.

과거엔 폐지 수집장까지 왕복 1시간 이상 직접 수레를 끌고 가야 했지만 인천내일을여는집(이사장 이준모 목사)이 운영하는 실버자원협동조합 ‘사랑의 손수레’ 덕분에 지금은 수고를 덜었다. 조합 전용 트럭에 폐지를 실어두면 한 번에 매입 과정을 거쳐 판매대금을 전달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해질 때까지 동네 곳곳을 돌며 수레를 채워 넣으면 100kg 정도 모을 수 있다”고 했다. 폐지 100kg을 모아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4000~5000원. 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노력의 산물이다. 하지만 박씨는 최근 일주일치 폐지 판매대금을 포기했다.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서다. 그는 “사람은 서로 돕고 사는 게 당연한 것”이라며 웃었다.

인천 동구의 희망키움터. 이곳은 매일 오전 9시면 65세 이상 어르신들의 자활근로 사업장으로 변신한다. 15명 내외의 어르신들이 역할을 나눠 뚜껑과 몸통, 펜심을 조립하다보면 어느 새 완성된 볼펜들이 수북이 쌓인다. 하루 평균 3시간, 한 달을 근로했을 때 받는 돈은 30여만원. 어르신 대부분이 인근 쪽방촌에 거주하는 주민들이지만 이들도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위한 나눔에 동참했다.
인천 동구의 자활근로 사업장에서 지역 내 어르신들이 볼펜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인천내일을여는집 제공

이준모 목사는 “16년 전, 쪽방촌 주민 중 몇 분이 ‘늘 도움을 받아와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작더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줘보자’며 성금을 내놓은 것이 마중물이 돼 매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매년 12월이면 인천내일을여는집이 마련한 성금 모금함이 1~2주에 걸쳐 지역 내 무료급식소 재활용센터 노숙인쉼터 희망키움터 등을 성화 봉송하듯 릴레이로 찾아간다. 첫 해 63만원이 모였던 성금은 매년 조금씩 늘어 지난 22일 성금 전달식에선 221만원으로 불어났다. 16년 동안 전달한 성금은 2500만원이 넘는다.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 결과 ‘최근 1년 동안 기부를 한 적이 있는 사람’의 비율은 23.7%로 10년 전인 2013년(34.6%)보다 10.9%포인트나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연속된 고물가 행진에 전기 가스 수도 등 공공요금도 일제히 인상되면서 지갑이 얇아진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나보다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해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고 전하려는 마음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온기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이준모(왼쪽 세 번째) 인천내일을여는집 이사장과 지역 주민 대표들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아 성금을 전달한 뒤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인천내일을여는집 제공

성금 전달식(사진)에 주민 대표로 참석한 이정순(71)씨는 “자활근로 작업장에서 14년째 일하면서 매년 성금을 낼 때마다 더 많이 내놓지 못해 부끄러울 뿐”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나눔에 동참해 세상이 좀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