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민 재판 “‘몰래 녹음’ 정당 행위” 판단… 유죄 이유는?

입력 2024-02-01 18:29 수정 2024-02-02 09:37
웹툰 작가 주호민이 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주 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 A씨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후 법원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이 웹툰 작가 주호민씨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 A씨에 대해 ‘벌금형 선고유예’ 판결을 내린 데는 ‘몰래 녹음’의 증거 능력이 인정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는 최근 아동 학대 사건에서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파일 등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증거능력이 없다고 본 대법원 판례와 차이가 있다.

1일 수원지법 형사9단독 곽용헌 판사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교사 A씨에 대해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A씨 측은 주씨가 자녀 외투에 녹음기를 넣어 교사와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것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위법 수집 증거라며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통신비밀보호법 14조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같은 법 4조도 이를 위반해 취득한 내용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특히 A씨 변호인은 지난 달 11일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생 교사 B씨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한 대법원 최근 판례를 인용해 녹음 파일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대법원은 타인 간의 대화를 제3자인 부모가 몰래 녹음한 것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며 부모가 자녀 몰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교사의 막말을 확보했더라도 형사재판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핵심 쟁점…‘몰래 수집 증거’ 인정 여부

연합뉴스

이날 재판에서 곽 판사는 변호인 주장 중 ‘위법 수집 증거’를 ‘제일 우선 시해야 할 주장’이라며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곽 판사는 “피해 아동과 모친은 별개의 인격체이며, (녹음된) 대화가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녹음 파일은) 통신보호비밀법이 규정하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한다”면서도 “다만 대화의 녹음행위에 ‘위법성 조각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 그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이지만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될 경우 통신비밀보호법 4조(증거사용 금지)를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형법 20조(정당행위)를 근거로 녹음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형법 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나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은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곽 판사는 “피해자는 이미 4세 때 자폐성 장애로 장애인으로 등록됐으며,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아동학대 범행을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없었던 점, 피해자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고 느낀 모친 입장에서 신속하게 이를 확인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CCTV가 설치된 어린이집이나 방어 및 표현 능력이 있는 학생들의 수업이 이뤄진 교실과 달리 이 사건은 CCTV가 설치되지 않은 맞춤 학습실에서 소수의 장애 학생만 피고인의 수업을 듣고 있었으므로, 말로 이뤄지는 정서학대의 특성상 녹음 외 학대 정황을 확인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모친의 녹음행위는 정당행위로 인정된다”고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아울러 “이 수업은 의무 교육에 의한 공교육으로, 녹음으로 침해되는 사생활보다 보호할 수 있는 이익이 더 커 보인다”며 “결국 통신비밀보호법에도 불구하고 (녹음 파일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항소·상고심 정당한 녹음 다툴 여지"

웹툰 작가 주호민이 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주 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특수교사 A씨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A씨 변호인은 이 같은 1심 판결에 반발해 즉각 항소 방침을 밝혔다.

A씨 변호를 담당한 김기윤 변호사는 “(피해 아동 측이) 몰래 녹음한 부분에 대해 재판부가 증거 능력을 인정했는데 경기도교육청 고문 변호사로서 재판부에 상당한 유감을 표한다”며 “몰래 녹음에 대해 유죄 증거로 사용할 경우 교사와 학생 사이에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교육청에서는 수업 시간에 몰래 녹음한 부분에 대해 증거 능력이 없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씀드린 만큼 앞으로 차분하게 항소심에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선 대법원의 판결과 달리 ‘몰래 녹음’의 증거 능력이 인정된 것에 대해서 유어스 법률사무소 임주혜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제3자가 녹음한 파일을 증거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으로 평가된다”며 “앞선 대법원 판결과 상충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사건마다 상황을 다르게 판단하기 때문에 기본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법성 조각 사유가 적용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1심 판결에 대한 평가가 많이 갈리기 때문에 항소심이나 대법원에서 정당한 녹음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다툴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A씨는 2022년 9월 13일 경기도 용인의 한 초등학교 맞춤 학습반에서 주씨 아들(당시 9세)에게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아휴 싫어. 싫어죽겠다. 너 싫다고.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라고 발언하는 등 피해 아동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됐다.

주씨 측은 당시 아들 외투에 녹음기를 넣어 학교에 보낸 뒤 녹음된 내용을 토대로 A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이강민 기자 riv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