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강원도 강릉에서 할머니가 몰던 차량이 급발진 의심 사고를 내면서 손자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책임 소재를 둘러싼 손해배상 소송에서 ‘제동등 점등 여부’가 쟁점이 됐다.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부장판사 박재형)는 30일 운전자 A씨와 그 가족들이 제조사를 상대로 낸 7억6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사건 검증기일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우선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하기 전 주행 과정에서 차량 후미의 뒷유리창 상단에 있는 보조 제동등이 들어왔는지’부터 짚고 넘어가기 위해 당시 사고 차량을 뒤따르던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재생했다.
재판부는 급발진 현상이 일어나기 직전에 발생한 모닝 차량 추돌 전 사고 전에는 차량의 좌우에 있는 메인 제동등은 점등되지만 보조 제동등은 점등이 되지 않는 점은 다툼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제조사(피고) 측도 점등 사실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다른 영상들과 비교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모닝 차량과 추돌 직전 또는 직후로 보이는 순간 사고 차량에 순간적으로 점등되는 모습도 확인했다. 이를 두고 운전자(원고) 측은 “슬로비디오를 통해 프레임별로 나누어보면 충격 전 점등됐다”고 주장했고, 피고 측은 “충돌 관성에 의해 메인 제동등이 들어온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원고 측은 사고 차종과 같은 차량(2016년식)을 대상으로 이뤄진 정면충돌 시험 결과 시속 50㎞로 달리다가 충돌하더라도 브레이크 페달의 관성이 크지 않아 제동등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재차 반박했다.
양측은 ‘제동등이 점등되는 방식’을 두고도 견해차를 보였다. 피고 측은 “브레이크를 밟으면 ECU 상태와 관계없이 제동등이 들어온다”고 주장했다. ECU는 자동차의 주 컴퓨터이자 사람으로 따지면 두뇌에 해당하는 전자제어장치다. 반면 원고 측은 “ECU를 거치지 않고서는 제동등이 점등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사고 차량이 마지막 충돌 전 국도를 질주하는 모습이 찍힌 CCTV 영상을 재생해 메인 제동등이 들어왔는지 살폈다. 원고 측은 “메인 제동등에 불이 켜져 이전보다 더 하얗고 밝게 변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주장했으나 피고 측은 “(사고 시각이) 낮이다 보니 햇빛이 반사될 수 있어 영상만으로는 점등 여부가 불분명하다. 우리(제조사)는 제동등이 안 들어왔다고 보고 있다”고 맞섰다.
영상 검증을 마친 재판부는 추가 심리를 위해 양측에 전문가 증인 신청을 요청했다. 또 원고 측에서 신청한 재보완 감정을 모두 받아들이고, 제동등 점등과 관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또는 ECU 제조사에 대한 사실조회 신청도 독려했다.
2022년 12월 6일 강릉시 홍제동에서 60대 A씨가 손자 이도현(사망 당시 12세)군을 태우고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몰던 중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해 도현군이 숨졌다. 당초 A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됐는데 전국에서 A씨에 대한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가 빗발쳤다. A씨는 결국 경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다음 변론기일은 오는 3월 26일 열린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