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100년’ 美 한인, 30년 만에 조기 출소 이유는?

입력 2024-01-29 15:06
지난 26일 미국 일리노이주 교도소를 나와 한인 후원자가 건네준 두부를 먹는 앤드루 서. 캔디스 챔블리스 변호사 제공·시카고 트리뷴 화면 캡처

1995년 9월 누나의 동거남을 살해한 혐의로 100년형을 선고 받았던 재미 교포 앤드루 서(50·한국명 서승모)씨가 수감 30년 만에 조기 출소했다. 서씨 석방을 계기로 그의 기구한 가정사가 미국 시카고 현지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26일(현지시간) 시카고 트리뷴에 따르면 1995년 당시 징역 100년형을 선고 받았던 서씨는 지난 26일 오전 9시45분쯤 미국 일리노이주 서부 키와니의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이날 서씨가 구명 운동을 펼친 한인 교회 신도들과 변호인 등 일행에게서 두부를 건네받아 먹는 모습이 현지 언론에 보도됐다.

서씨는 1993년 9월 25일 시카고 벅타운의 가정집 차고에서 누나 캐서린(54)의 동거남 로버트 오두베인(당시 31세)을 총격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어 1995년 징역 100년형을 선고 받았고, 항소심에서 80년형으로 감형됐다. 미국 검찰은 당시 서씨와 누나가 오두베인 명의의 생명보험금 25만달러(한화 약 3억3000만원)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봤다.

하지만 서씨는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누나에게 속았다”는 일관된 주장을 펼쳐왔다. 누나가 당시 대학교 2학년이던 그에게 “오두베인이 엄마를 죽였다”며 “엄마가 남긴 재산을 오두베인이 도박 빚으로 탕진하고 (나를) 학대한다”며 범행을 사주했다는 것이다.

서씨는 재활·교육 프로그램 이수, 교도소 내 호스피스 병동 자원봉사, 청소년 멘토링 활동 등 성실하게 수감생활을 했다. 트리뷴은 “지난 1월 발효된 새로운 일리노이 주법에 따라 서씨는 그간 감옥에서 모범수로 쌓은 신용, 교도소 내 노동시간, 재활 프로그램 이수 등 성과에 대해 4000일가량을 복역 일로 인정받게 됐다”며 “남은 형량에 대한 감형 요청을 관할 쿡 카운티 검찰이 수용했다”고 전했다.

서씨를 변론한 비영리단체 ‘일리노이 교도소 프로젝트’(IPP) 법률고문 캔디스 챔블리스 변호사는 “서씨가 지난 24일 조기 출소 가능성을 통보받고 무척 기뻐했다”며 “그는 제2의 인생을 살 준비가 충분히 됐다”고 전했다.

앤드루 서(Andrew Suh). Andrew Suh Advocacy Team / The House of Suh SNS 캡처

서씨의 가정사는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하우스 오브 서(House of Suh, 2010)’로 제작될 만큼 극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군 장교 출신 아버지와 약사 출신 어머니는 서씨 남매를 데리고 1976년 미국 시카고로 이민했다. 그러나 9년 만인 1985년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홀로 남매를 키우던 어머니도 2년 뒤 의문의 강도에게 살해당했다. 어렸던 서씨는 유일한 혈육인 누나 캐서린에게 크게 의지했다고 한다.

서씨는 자신의 범행 배경에 관해 “오두베인을 죽이는 것이 어머니 원수를 갚고 누나를 보호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가족을 위해 옳은 일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고 영화 제작진에게 설명했다.

다만 누나 캐서린이 왜 살인을 사주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서씨는 2017년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선 “누나 캐서린이 80만달러(약 10억원)의 유산을 노리고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캐서린은 하와이로 도주했다가 붙잡힌 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서씨 어머니의 사망 사건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