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편향에 휘둘린 천사섬…교계 ‘촉각 곤두’

입력 2024-01-24 11:22
'섬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인 12사도 예배당 명칭이 바뀌어 논란이 일고 있다. 당초 '시몬의집'이었던 예배당 명칭이 '사랑의집' 표지판으로 교체돼 있다.

전남 신안군 천사섬 일대 ‘섬티아고 순례길’의 12사도 예배당 명칭에서 사도들의 이름이 사라졌다는 본보 단독 보도(국민일보 2024년 1월 23일자 33면 보도) 이후 교계 안팎에서 예배당 명칭 교체를 둘러싼 공분이 잇따르고 있다.

“자기들 마음대로 종교와 그 이름을 차용해 구경거리로 만들었다가 반대 의견이 나오자 다시 슬그머니 이름을 바꾸는 행태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건강의집'으로 바뀐 '베드로의의집' 표지판. 왼쪽 사진이 교체되기 전의 표지판. 소악교회 제공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이억주 목사)는 23일 ‘종교를 돈과 관광의 즐길거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언론회는 “기독교 흔적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름으로 12사도의집을 명명한 건 기독교 모욕”이라며 “지자체가 인위적으로 종교를 빙자해 지역에서 돈벌이 수단으로 종교를 이용하려는 행태도 옳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예배당이 세워질 당시부터 ‘건강’ ‘지혜’ 등 또 다른 건물 명칭이 있던 사실을 몰랐던 독자도 기자에게 같은날 메일로 아쉬움을 전했다. 은퇴장로라며 자신을 소개한 정남준(가명)씨는 “지난해 11월 순례길을 찾았는데 사랑의 대명사인 사도 요한의 집은 ‘생명평화의집’이 됐고, 정작 ‘사랑의집’ 표지판은 엉뚱하게도 11번째집(시몬)에 걸려 있었다”며 “예수를 배신한 가롯유다의 집이 왜 ‘지혜의집’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12사도의 성격이나 특성과 전혀 무관한 예배당 명칭을 본 뒤 안타까우면서도 화가 났다”고 했다.

순례자의섬 순례 코스 지도. 지난해 4월 12사도 예배당 표지판이 바뀐 뒤 12사도 이름은 영문 작은 글씨로만 표기돼 있다.

글·사진=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