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5명 낳고 50년 같이 산 아내 살해한 70대…징역 20년 확정

입력 2024-01-23 15:13
국민일보 DB

50년 동안 함께 산 아내를 자녀가 보는 앞에서 잔혹하게 살해한 70대 남성에게 징역 20년형이 최종 선고됐다.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지으며 “범행 동기에 참작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74)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2월 서울 양천구의 자택에서 아내 B씨(68)를 둔기로 수십 차례 가격해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당신 명의의 집을 담보로 1000만원 대출을 받아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1973년 B씨와 혼인한 이후 5명의 자녀를 슬하게 두고 50년간 혼인 생활을 유지했다. 그런데 A씨는 오래 전부터 술에 취하면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폭행하거나 집안의 물건을 부수곤 했으며, 수년 전부터 알코올 중독의 영향으로 그의 폭력적인 행동은 점점 정도가 심해졌다.

2020년 10월에는 B씨에게 “불을 질러 죽이겠다”며 라이터로 주거지 안방 장롱에 있던 속옷에 불을 질렀다가 현주건조물방화미수죄로 처벌 받았다. A씨는 범행 당시 집행유예 기간이기도 했다.

일정한 소득이 없던 A씨가 가정 일에 소홀했던 반면 B씨는 홀로 부양과 양육을 도맡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알코올 중독 상태였던 A씨는 범행 직전에도 맥주 5병 이상을 마신 것으로 파악됐다. 범행 당시엔 자녀 중 한 명이 사건을 직접 목격했다. 자녀 모두 A씨의 처벌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부부의 인연을 맺은 배우자를 살해하는 행위는 가장 존엄하고도 중대한 법익인 사람의 생명을 박탈함과 동시에, 혼인관계에 기초한 법적·도덕적 책무를 원천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라면서 “가족 간의 윤리와 애정을 무너뜨리고 남아있는 자녀들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크나큰 고통과 상처를 남기므로 이 사건 범행의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밝혔다.

이어 “A씨는 아내가 무리한 금전적 요구를 거절하자 격분하여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면서 “그 범행 동기에 참작할 여지가 전혀 없다. 범행 수법이 매우 잔혹하고 무자비하다”면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1·2심에서 “범행 당시 심신미약의 상태였다”는 주장을 반복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