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고위험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게 맞느냐’는 해묵은 논란이 다시 부상했다. 주요 시중은행에서 판매된 홍콩 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이 현실화하면서다. 금융 당국 내에서도 은행 관련 고위험 금융상품 관련 규제 수위에 대한 의견은 엇갈려 제도 개선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 H지수 ELS의 원금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서 판매된 홍콩 H지수 ELS 상품은 올해 들어 지난 19일까지 2296억원의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해당 기간 만기 도래한 원금 4353억원 중 2057억원만 상환되면서 손실률은 52.8%를 기록했다. 최근 추세에 따라 손실률이 60% 수준까지 오르면 5대 은행의 원금 손실 규모가 상반기에만 6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불완전 판매 등 위법 행위를 확인하기 위한 현장 검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고위험 금융상품 판매 관련 제도 개선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미 해외 주요국을 중심으로 고위험 금융상품 관련 사례를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의 고위험 금융상품 판매 논란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불거졌다. 2019년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금융 당국은 후속 대책으로 은행이 고위험 금융상품을 사모펀드 형식으로 파는 행위를 제한하고, 신탁도 제한 대상에 포함했다.
하지만 “40조원 이상의 신탁 시장을 잃을 수 없다”는 은행권의 강한 반발에 ELS 신탁 판매 길을 열어주며 ‘제한적 허용’으로 한발 물러섰는데, 그게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이다. 물론 판매량을 은행별 잔액 한도 내로 제한하고 기초자산을 코스피200·S&P500·유로스톡스50·홍콩H지수·닛케이225 등 5개 지수로 한정하는 조치도 뒀지만 대규모 손실을 피할 길은 없었다.
은행의 고위험 상품을 전면 금지해야 하는지를 두고서는 금융 당국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한 당국 관계자는 “금융 소비자가 은행에 기대하는 역할이 고객의 안정적인 자산 관리라는 측면에서 보면 원금 손실 가능성이 크고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구조의 상품은 증권사에서 판매하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다른 금융 당국 관계자는 “무턱대고 판매를 틀어막는 것은 오히려 자본시장 위축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금융 소비자의 접근성 및 선택권 보장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금융 당국의 제도 개선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이자 장사를 하지 말라면서 비이자수익 확대를 위한 신탁 판매 등 다른 돌파구까지 막는 것은 모순적”이라며 “불완전 판매는 엄격히 다뤄져야 할 문제지만 ELS 상품 자체에 불법성이 있는 것도 아닌데 판매 자체가 전면 금지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