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지 대원, 근무중 이상무!” 호암산에 뜬 반려견순찰대

입력 2024-01-18 18:32
반려견순찰대 오이지 대원이 지난 14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 호암산 폭포 주변을 순찰하고 있는 모습. 김경덕씨 제공

지난 17일 오전 8시 서울 금천구 호암산에 ‘오이지’ 대원이 모습을 나타냈다. 순찰 임무를 맡은 오이지 대원은 사람이 아닌 검은 털의 래브라도 리트리버다.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 주도로 지난 2022년 출범한 ‘반려견순찰대’ 소속이다.

오이지 대원은 견주인 김경덕(62)씨 부부와 함께 익숙한 듯 둘레길과 숲길 약 3㎞를 천천히 돌며 순찰했다. 인근 아파트 단지와 연결된 통로 주변에서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우며 술을 마신다는 첩보를 접수한 후였다. 담뱃불로 화재 위험도 있는 상황. 오이지 대원은 연신 킁킁대며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반려견순찰대 오이지 대원이 견주 김경덕(62)씨와 함께 서울 금천구 호암산 숲길 일대를 순찰하고 있다. 정신영 기자

서울에는 오이지 대원 포함 총 1011마리의 반려견들이 순찰대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오이지 대원은 그중에서도 베테랑에 속한다. 반려견순찰대 1기로 613회 순찰에 나섰고, 폭행·마약 투약 의심 현장부터 폐기물 무단 투기 사례까지 신고 건수만 122건에 달한다. 그간 받은 상도 3개나 된다.

지난해 5월 서울 금천구 시흥동 호암산에서 실종된 아이를 수색하고 있는 반려견순찰대 오이지 대원 모습. 김경덕씨 제공

지난해 5월 호암산에서 실종자를 찾아낸 것도 오이지 대원이었다. 당시 아침 순찰 중이던 오이지 대원은 한 할머니를 발견하곤 발길을 멈췄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숲으로 들어간 손주가 보이지 않아 40분 넘게 홀로 찾아다니던 중이었다. 견주 김씨 부부는 바로 경찰에 신고한 뒤 오이지 대원과 함께 아이를 찾아 나섰다. 오이지 대원은 수색 20분 만에 아이를 인근 연못에서 찾았다. 김씨는 “목줄을 당겨도 움직이지 않길래 봤더니 한 할머니가 산을 보며 울고 있었다”며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오이지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알아차린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한 자폐 중학생이 또래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을 막아내기도 했다. 오이지 대원이 학생이 공원을 배회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중 발생한 일이었다. 경찰 확인 결과 이 학생은 가출 신고가 접수된 상태였다. 학생이 다른 데로 가지 못하도록 막아달라는 경찰의 연락을 받은 김씨는 이들을 분리 조치하고 학생을 어머니 품으로 인계했다. 지난달 18일 아침 순찰 때도 오래된 전기장판을 이불 삼아 누워있던 노인을 발견해 119에 신고하기도 했다. 저체온증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지난 17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 한 공원에서 반려견순찰대 오이지 대원이 한 노인을 살피고 있다. 김경덕씨 제공

오이지 대원의 주 순찰지역은 인적이 드문 둘레길을 비롯해 노숙·주취자가 모이는 공원, 필로티 주차장이 밀집한 빌라촌 등이다. 김씨는 “날이 춥고 빙판길에 걷기도 쉽지 않은 날에는 그냥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공직의 무게 탓에 견디며 순찰하고 있다”며 “과거라면 피해갔을 곳을 이제는 일부러 찾아다닌다”고 말했다. 강력범죄로 세상이 떠들썩할 때는 하루에 2~3회인 순찰 횟수를 더 늘린다고 했다. 근무를 잘한다며 용돈을 건네는 이들도 있다. 이날도 팬클럽 회원을 자처한 한 할아버지가 “오늘도 근무 고생하라”며 멀리서부터 손뼉을 치며 반겼다.

반려견순찰대는 지난해 8개월 간의 활동 기간 동안 범죄예방(112) 신고 317건, 생활위험 관련(120) 신고 2187건 등을 기록했다. 이들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음주 운전자를 신고해 피해를 막거나 길 잃은 지적장애인을 신고해 가족에게 인계하기도 했다.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 관계자는 “동네에 대한 애정을 갖고 우리 동네가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됐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활동에 참여하는 분들이 많다”며 “치안 서비스 수혜자의 입장에서 이제는 공동 생산자로 참여하면서 협력을 활성화하는 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글·사진=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