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단 한마디라도” 미쓰비시 상대 승소한 정신영 할머니

입력 2024-01-18 16:57
18일 광주지법에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정신영(94) 할머니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듣고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2차 집단소송에 참여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광주지법 민사13부(재판장 임태혁)는 18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정신영(94) 할머니를 포함한 원고 4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 측에게 정 할머니와 원고 1명에게 1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고, 나머지 원고 2명에게는 1억6000만원, 1800만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법정에서 직접 판결 선고를 들은 정 할머니는 “일본이 지금이라도 (당시 강제동원된) 대한민국 소녀들에게 ‘고생 많이 시켜서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한 마디 해주면 좋겠다”며 “(피해) 노인들이 다 (세상을) 떠나시고 몇분 남지 않았는데 일본에서 보상해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정 할머니는 1944년 5월 만 14세 나이에 “일본에 가면 좋은 학교도 다니게 해주고 밥도 잘 준다”는 말에 속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끌려갔다. 이후 열악한 환경에서 페인트 보조 작업을 반복했다.

정 할머니는 매일 공습경보가 울려 이불을 뒤집어쓰고 두려움에 떨었고, 방공호를 찾아 도망다녀야 했다고 한다. 1944년 12월 7일 도난카이 지진으로 공장 벽이 무너져 할머니와 함께 일본으로 넘어간 또래친구 7명이 숨지기도 했다.

정 할머니는 이번 재판 과정에서 “다친 손을 치료받지 못했고, 식사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어야만 했다”고 과거 일을 증언했다.

정 할머니를 비롯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1945년 도야마 미쓰비시 공장으로 옮겨 일하다 광복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귀국한 뒤에도 일본에 다녀온 사실이 알려지면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돼 강제동원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

90세가 된 정 할머니는 용기를 내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동참했다. 이후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2020년 1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2억4000만원 상당의 위자료 지급을 요구하는 강제동원 2차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재판은 국제 송달로 부친 소송 서류를 일본 정부가 미쓰비시 측에 전달하지 않고, 미쓰비시 측도 출석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면서 2020년 1월부터 3년 10개월 가까이 공전했다.

재판이 더디게 진행되던 와중에 2022년 7월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일본연금기구’가 정 할머니의 계좌에 ‘후생연금 탈퇴수당’으로 99엔(한화 931원)을 송금한 사실이 알려졌다.

화폐 가치 변동을 보전하지 않고 약 77년 전의 액면가만 지급하면서 당시 ‘악의적인 모욕’, ‘고령의 피해자에 대한 우롱’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정 할머니는 후생연금 탈퇴수당 931원(99엔) 지급 건에 대해 “아이들 과자 값도 안되는 돈을 줬다”며 “이제 전시 상황도 아니고 평화가 와서 잘살고 있는 만큼 (강제동원) 할머니들을 도와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한편 최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승소하는 사례들이 나오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극히 유감스러우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방유경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