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인데 내가 굳이…” 우주항공청 인재확보 어쩌나

입력 2024-01-18 11:56 수정 2024-01-18 11:59
게티이미지

한국판 나사(NASA·미 항공우주국)로 불리는 우주항공청 출범을 앞두고 우주 인재 확보에 비상등이 켜졌다. 국내 인력 풀이 좁은 데다 출범 시점인 오는 5월까지 300명의 인원을 확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연구 현장에서는 출범 시간표에 얽매이지 않고 역량을 갖춘 국내외 인재를 확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숫자 채우기’는 의미 없어
1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우주항공청 직원은 연구원 200명, 행정 공무원 100명 등 300명으로 조직될 예정이다. 과기정통부는 국내외 전문가 중심으로 인력을 구성하고 정책 수립이나 행정 업무를 위해 일반직 공무원을 배치할 계획이다.

공개채용 방식뿐 아니라 적극적인 스카우트를 통해 국내외 전문가를 ‘모셔와’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 우주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기획하는 업무를 맡긴다는 구상이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 11일 브리핑에서 “인력 수급은 국내외 전문가를 모두 대상으로 한 스카우트나 공채 형식이 될 예정”이라며 “개청과 동시에 많은 인원이 근무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우주항공 분야의 인력은 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과 천문연구원(천문연) 등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우주산업 분야 민간기업에 집중돼 있다. 과학계에서는 항우연과 천문연을 중심으로 인력을 수혈하면 연구 인원 200명을 채울 수는 있을 것으로 본다. 항우연과 천문연 소속 인원은 각각 1000여명, 400여명이다. 연구원 수는 각각 700여명, 170여명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국가 주도의 우주 프로젝트 밑그림을 기획하거나 관련 개념 연구를 진행할 인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들 연구원은 주로 인공위성이나 특정 발사체 등 상당히 좁은 분야의 연구 활동에 특화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기존 연구기관 인원으로 우주항공청 연구원을 모두 채우는 것은 큰 틀의 우주 사업을 주도하는 우주항공청과 산하 연구기관이 협업하는 형태로 설계된 조직 구조와도 어긋난다. 한 연구원은 “연구 인력 200명을 뽑는다고 하는데 그러려면 최소한 2~3배인 400~600명의 국내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라며 “국내 인력 상황을 보면 우주항공청에 걸맞은 부문별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연구원은 “한국 출신이면서 외국의 기관이나 우주업체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전문가들을 최대한 스카우트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 우주 분야 인력은 지난해 조사에서 1만125명으로 집계됐다. 이 인원은 지난해 8월부터 2개월간 국내 우주산업 관련 기업, 연구기관, 대학을 대상으로 진행된 ‘2023 우주산업실태조사’에 따른 것이다. 1만명 넘은 우주 인력 중에서 우주항공청에 필요한 200명 이상을 뽑는 일은 언뜻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소속별로는 기업 7501명, 연구기관 1231명, 대학 1393명이다. 여기에는 연구 인력뿐 아니라 생산직과 사무직 인원까지 포함돼 있어 실제로 우주항공청 임무를 수행할 만한 연구원 비중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기업체에서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는 고급 인력을 빼오는 일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른바 돈 되는 우주산업으로의 쏠림 현상도 심화된 상태다. 분야별로 보면 위성활용 서비스 및 장비 분야 인력이 4898명으로 48.3%를 차지했다. 이어 위성체 제작 1801명(17.8%), 발사체 제작 1413명(14.0%), 지상장비 1001명(9.8%), 과학연구 768명(7.6%) 등이었다. 우주탐사 분야는 204명(2.0%)에 그쳤다.

발사체 분야 연구원은 “기업의 연구 인력은 주로 개발이나 제작 업무를 하는데 항공우주청은 기획이나 정책 업무 성격이 강하다. 스카우트 제안이 있더라도 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경력은 쌓아야 우주 인력
우주 인력 양성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점도 인력 수급을 어렵게 한다. 우주산업에 참여한 대학의 우주학과와 관련 학과의 2022년 졸업생 수는 1442명으로 조사됐는데 이 가운데 우주 분야의 석사 등 상급 과정을 밟은 진학생 수는 254명에 불과했다.

이들이 우주 사업에 투입되려면 졸업 이후의 현장 경험이 필수적이다. 이재진 천문연 우주과학본부장은 “대학에서 우주 분야 학과를 전공한다고 해서 곧바로 우주 인재가 되지는 않는다”며 “졸업생들이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10년 정도 경험을 쌓아야 현장에서 필요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주항공청이 들어설 경남 사천의 입지 조건도 우주 인재를 끌어 모으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경남도는 우주항공청을 중심으로 산업·연구·국제교류·교육·관광 등의 복합 기능을 갖춘 우주항공복합도시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우주 인력이 사천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주거·교통·교육·의료 인프라를 마련하기 위한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 기업이나 대전 연구기관에 몰려 있는 우주 인력이 연고도 없는 사천으로 이사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우주산업 분야 기업은 2022년 기준 절반 이상이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에서 일하는 한 연구원은 “굳이 사천으로 내려갈 만한 이유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기 관점에서 정부가 우주 인력 풀을 넓히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초과학부터 융합기술까지 아우르는 연구를 기반으로 장기전 성격을 띠는 우주항공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지속적인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분석이다. 이상률 항우연 원장은 “200명의 우주항공청 연구 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라며 “5월 출범에 딱 맞추기보다는 차근차근 우수한 인력을 모으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팀장은 “우주 인력에만 집중해선 안 된다”며 “우주 분야는 융합적인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전체 과학 분야의 연구·개발 인력 풀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