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이 집에 데려다준 주취자가 한파에 숨진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경찰관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에 경찰 내부에서는 “술에 취한 사람을 상전으로 모셔야 하느냐”는 취지의 거센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서울 강북경찰서 미아지구대 소속 A경사와 B경장에게 최근 각각 벌금 500만원과 400만원의 약식명령을 선고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30일 새벽 112 신고를 받고 술에 취해 길가에 누워 있던 60대 남성 A씨를 강북구 수유동 다세대주택 야외 계단에 앉혀놓고 돌아가 A씨가 저체온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이번 사건에 대해 “사망 예견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구호조치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경찰관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만취한 남성을 집에 데려다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혹시 모를 사망 가능성까지 예지해 집 안까지 모셔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경찰관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주취자를 왕처럼 모셔야 하느냐”며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검찰이 경찰관들을 기소하며 적용한 죄목은 업무상 과실치사인데, 하루에도 수십건의 주취 관련 신고가 들어오는 상황에서 너무 가혹한 법 적용을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파출소에 근무하며 주취자 신고 처리를 많이 경험해봤다는 한 경찰관은 내부 게시판에 “신고받고 가면 자기가 알아서 갈 테니 신경 쓰지 말라며 비틀비틀 걸어가는 것을 보고 현장 조치를 마무리하는 게 통상적이었다”며 “(이번 사건의) 경찰관은 주취자를 다세대주택까지 데리고 갔으나 정확한 호실을 몰라 대문 안 계단에 놓고 귀소했다. 통상적인 주취자 처리였다. 경찰청은 말단 직원들에게 무한책임을 요구하고 있다”고 적었다.
다른 경찰관들도 “주취자를 어디까지 모셔다 드려야 업무상 과실치사를 면할 수 있나” “앞으로는 주취자 집에 안방까지 가서 이불 덮어주고 물도 떠다 주고 나와야 한다” 등 자조 섞인 푸념을 이어갔다.
술에 취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경찰의 보호조치 근거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있다. 해당 법 4조를 보면 ‘술에 취해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해 보호조치를 하도록 돼 있다.
문제는 일선 경찰관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주취자를 보호해야 하는지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경찰 외 소방 당국이나 지방자치단체 등 유관기관과 어떤 식으로 협력하거나 역할 분담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적혀 있지 않다.
이 같은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경찰은 지난해 5월 정상적인 판단·의사 능력이 없는 주취자를 응급의료센터 등 의료기관으로 옮기도록 매뉴얼을 손질했다. 하지만 주취자 병상이 있는 의료시설은 전국에 49개밖에 없어 연간 90만건에 달하는 주취자 관련 112 신고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시를 다투는 환자들이 찾는 응급의료센터에 주취자를 수용하는 게 정당하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특히 술에 취한 이들이 의료진을 상대로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도 늘어나며 ‘응급실 수용’이 근본적 대책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법 개정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 국회는 3년째 손놓고 있다. 주취자 처벌법이 2021년 4월 발의됐지만 여전히 계류 상태이고, 주취자 보호법 4건은 6개월 넘게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전날 주재한 업무회의에서 “청장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다양한 지원 방법을 강구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실감한다. 법무와 감찰, 범죄 예방을 포함한 관련 기능에 부족한 점이 없는지 논의해 달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