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자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한 뒤 군 조직에서 2차 가해까지 당한 고(故) 이예람 중사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재판부가 직무 유기 혐의 등으로 기소된 대대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정진아)는 15일 위계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대대장 김모(46) 중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중사 직속 상급자 김모(31) 대위와 군검사 박모(31)씨에게 각각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증거인멸의 우려는 없다고 보고 법정 구속하지는 않았다.
이 중사 모친은 이날 법정 방청석에서 1심 선고를 듣던 중 실신했다. 이로 인해 선고가 4분여간 중단되기도 했다. 이 중사 부친은 선고 직후 김 중령을 향해 “네가 어떻게 무죄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이던 이 중사는 선임자인 장모 중사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뒤 2차 가해에 시달리다 2021년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중사의 소속 부대 대대장이던 김 중령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되지 않은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방치한 채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징계 의결을 미룬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김 중령에게 무죄를 선고한 배경으로 “2차 가해를 방지할 의무는 인정되나 구체적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중사에 대한 부당한 압력이나 회유, 소문 유포를 방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여러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이 중사 소속 부대 중대장이던 김 대위는 성추행 피해를 당한 이 중사가 전입하기로 한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 중대장에게 이 중사와 관련한 허위 사실을 말해 명예훼손을 한 혐의가 인정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이 중사가 20비행단과 관련한 사소한 사항이라도 언급하면 무분별하게 고소하는 사람’이라는 취지의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며 “군대 조직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이 정보는 광범위하게 전파됐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중사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전속 간 부대에서조차 근무자들의 냉랭한 반응으로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며 “이 범행은 일반적 명예훼손 범죄와 죄질의 무게감이 다른데도 피고인은 혐의를 부인하며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중사 사건 수사를 맡았던 당시 군검사 박씨는 허위보고 및 무단이탈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이날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박씨에 대해 “이 중사의 강제추행 사건을 송치받은 뒤 이 중사가 사망하기 전까지 약 한달 반의 기간 동안 별다른 수사를 진행한 사실이 없다. 피해자 조사 일정을 연기하기까지 했다”며 “이 중사가 사망한 뒤 사건 지연이 문제가 되자 이를 숨기기 위해 허위보고를 했다”고 질책했다.
이어 “박씨는 근무 중 무단이탈을 저지르며 개인 휴식을 취했지만 이 때 이 중사는 사건의 빠른 처리를 원했다”며 “박씨의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중사 유족과 피해자 측 대리인은 선고 후 기자들에게 “재판부가 직무유기의 범위를 아주 협소하게 인정한 판례에 근거해 판단해 아쉽다”며 “항소심에선 반드시 유죄로 밝혀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