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봉준호를 비롯한 2000여명의 대중문화예술인들이 고(故) 이선균씨 사망 사건은 ‘인격 살인’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수사정보 유출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한편 이른바 ‘이선균 방지법’ 제정에 나설 계획이다.
문화예술인연대회의(연대회의)는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2개월여간 가혹한 인격살인이 가해졌다”고 밝혔다. 이날 회견에는 봉 감독을 비롯해 영화감독 이원태, 배우 최덕문·김의성, 가수 윤종신 등이 참석했다.
봉 감독은 “고인의 수사에 관한 내부 정보가 최초 누출된 시점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2개월여간 경찰의 수사 보안에 한치의 문제도 없었는지 관계자들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며 “수사당국은 적법 절차에 따라 수사했다는 한 문장으로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감정 결과가 나온 당일 KBS 보도에 다수의 수사 내용이 포함된 경위가 밝혀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봉 감독은 “3차례 소환절차 모두 고인의 경찰 출석 정보를 공개한 점과 당일 고인이 노출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점이 과연 적법했는지 밝혀달라”고 덧붙였다.
성명에는 보도 윤리에 어긋난 기사를 삭제해달라는 요구도 담겼다. 가수 윤종신은 지난해 11월 24일 이씨의 사생활이 담긴 녹취록을 보도한 KBS를 언급하며 “혐의 사실과는 동떨어진 사적 대화를 보도했다. 공영방송의 명예를 걸고 오로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보도였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그는 “대중문화예술인은 대중의 인기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 이를 악용해 검증되지 않은 소스를 흘리거나 충분한 취재나 확인 절차 없이 이슈화에만 급급한 일부 유튜버를 포함한 황색언론들, 이른바 ‘사이버 렉카’의 병폐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 침묵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연대회의는 피의사실공표와 유출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이선균 방지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원태 감독은 “수사절차가 적법했다고 하더라도 정부와 국회는 이번 사망사건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된다”며 “형사사건 공개금지와 수사에 관한 인권보호를 위한 현행 법령에 문제점은 없는지 점검하고 필요한 법령의 제개정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대회의는 성명서를 김진표 국회의장과 경찰청, KBS에 전달할 계획이다. 이번 성명에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영화·문화계 종사자 단체 29곳을 비롯해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배우 송강호 등 2000여명의 문화예술인이 참여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