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날리면’ 1심 승소 외교부 “신뢰 회복”… MBC “국민 대다수 부동의”

입력 2024-01-12 15:36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뒤 회의장을 빠져 나오는 모습. MBC 보도화면 캡처

외교부가 MBC를 상대로 낸 ‘바이든-날리면 자막 논란’ 정정보도 청구소송에서 12일 승소했다. 외교부는 “이번 판결은 사실과 다른 MBC 보도를 바로 잡고 우리 외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MBC는 즉각 항소 뜻을 밝혔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성지호 부장판사)는 이날 외교부가 MBC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 청구소송 선고기일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MBC)는 이 사건 판결 확정 후 최초로 방송되는 뉴스데스크 프로그램 첫머리에 진행자가 별지 기재 정정보도문을 통상적인 진행속도로 1회 낭독하게 하고 낭독하는 동안 위 정정보도문 제목과 본문을 통상의 프로그램 자막 같은 글자체와 크기로 계속 표시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MBC가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기간 만료 다음 날부터 1일 100만원으로 계산한 돈을 외교부에 지급하도록 했다.

외교부는 판결 후 “법원의 정밀 음성 감정 결과로도 대통령이 MBC의 보도 내용과 같이 발언한 사실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며 “공영이라 주장하는 방송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확인절차도 없이 자막을 조작해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허위보도를 낸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바이든-날리면 자막 논란’의 시작은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을 방문했을 때다. 윤 대통령은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했던 국제회의장을 떠나며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OOO 쪽팔려서 어떡하냐”라고 말했는데, 이 발언이 방송기자단 풀(Pool) 화면에 찍혔다.

MBC는 이 영상과 음성을 보도하며 ‘OOO’ 부분에 ‘바이든’이라고 자막을 달았다. 미국의 대통령을 향해 비속어를 사용해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대통령실은 전문가 음성분석 결과 OOO은 ‘바이든’이 아닌 ‘날리면’이고, 미 의회가 아닌 우리 국회를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외교부도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조정 절차를 밟았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2022년 12월 MBC를 상대로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보도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윤 대통령의 당시 음성을 감정하는 방안을 원고와 피고 측에 제안했고 양측이 수용했다. 하지만 전문 감정인도 쟁점이 ‘OOO’ 부분에 대해 ‘감정 불가’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해 진위를 가려내지 못했다.

MBC는 즉각 항소 뜻을 밝혔다. MBC는 “종전의 판례들과 배치되는 이번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잘못된 1심 판결을 바로잡기 위해 곧바로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MBC는 “대통령의 ‘욕설 보도’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은 결과가 아니었다”며 “MBC 기자의 양심뿐 아니라 현장 전체 기자단의 집단 지성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법원의 판결은 ‘국가의 피해자 적격을 폭넓게 인정할 경우 표현의 자유와 언론 역할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판례, ‘공권력 행사자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과 배치된다”고 덧붙였다.

MBC는 또 “외교부가 대통령 개인 발언에 대해 정정보도를 청구할 자격이 없고, MBC 외에도 다른 언론사들도 대통령의 발언 논란을 보도한 데다 재판에서 MBC 보도가 허위라는 점도 입증되지 않았다”며 “외교부의 이번 소송은 국민 대다수가 대통령실의 ‘날리면’ 발언에 부동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에게 ‘밀리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