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네이비 실 팀 6(Navy SEAL Team 6·해군 특수부대)에 정적(政敵)을 암살하라고 명령한 경우 형사기소를 당할 수 있느냐.”(플로렌스 판 판사)
“하원이 탄핵을 의결하고 상원이 유죄판결을 내릴 때만 법무부가 대통령을 기소할 수 있다.”(존 사우어 도널드 트럼프 측 변호사)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에서 진행된 대통령 면책특권 문제 공개 변론에서 재판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의 면책특권 주장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재판부는 군에 명령을 내린 건 대통령 직무로 볼 수 있지만, 정적 암살은 명백한 법 위반이라는 취지의 질문을 던졌다. 판 판사는 대통령이 핵 기밀이나 사면권을 돈을 받고 팔아도 기소되지 않는다는 말이냐고 추궁하기도 했다.
캐런 핸더슨 판사도 “법을 충실히 집행해야 하는 헌법적 의무가 형법 위반을 허용한다고 말하는 것은 역설적”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측 주장을 받아들이면 미래의 대통령들이 끔찍한 행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견제나 처벌을 받지 않는 판도라 상자가 열릴 수 있다는 점을 항소법원 판사들이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다. 항소법원은 민주당 지명 판사 2명, 공화당 지명 판사 1명으로 구성됐다.
트럼프 측은 그러나 “대통령 공식 행위에 대한 기소 승인이 ‘대선 후 보복’ 악순환에 빠지는 회복할 수 없는 판도라 상자를 여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상·하원에서 탄핵 절차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통령 직무에 해당하는 어떤 행동에 대해서도 기소될 수 없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트럼프 측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의회에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허위 정보를 제공해 이라크와 전쟁하도록 한 것을 언급하며 그를 공무집행 방해죄로 기소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유세현장 대신 직접 재판에 출석해 논쟁을 지켜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시간 15분가량 진행된 변론에서 별다른 언급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고, 자신의 변호사가 ‘보복 악순환’을 언급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설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구두변론에 반드시 참석할 의무가 없었지만, 자발적으로 법정에 나왔다. WP는 “이아오와주 코커스를 앞두고도 재판에 참석하기로 한 건 자신의 형사 변론과 선거 메시지를 혼합할 계획임을 시사한다”며 “자신에 대한 형사기소가 대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판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은 잘못한 게 없고, 기소가 정치적이며, 면책권도 있다는 기존 주장을 반복했다. 또 “그들은 이런 식으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옳은 방법이 아니다”며 “(기소를 승인하면) 이 나라에 소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매우 나쁜 선례”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전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도 “나에게 면책특권이 없으면 부패한 조 바이든도 받지 못한다”고 적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러나 “항소법원이 면책특권 주장을 기각할 것이라는 시그널을 보내면서 트럼프 재판이 중대 국면으로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항소법원은 이번 사건에 관한 결정을 서두르겠다고 밝혔지만, 어떤 결론을 내리든 한 쪽의 항소가 불가피해 최종 결정은 연방대법원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오는 3월 4일로 예정됐던 대선 전복 시도 관련 본건 재판도 지연될 여지가 크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