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게임 중독’ 진단 도구, 중립·객관성 상실”

입력 2024-01-09 17:25

게임이용장애 국내 도입 여부를 판가름할 진단도구 개발이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9일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게임이용장애 실태조사 진단도구 보완 연구’에서 연구진은 “기획연구가 개발한 선별도구 및 진단면접도구는 충분히 신뢰할 만한 도구 재현성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 용역은 한국심리학회가 진행했다. 연구책임자는 조현섭 총신대 교수다.

이번 연구에서 검증한 보고서는 앞서 보건복지부가 발주한 ‘게임이용장애 실태조사 기획 연구’다. 지난해 나온 해당 연구 보고서에선 정신의학과 교수와 보건계열 전문가 위주의 연구진이 임의의 조사 도구를 만들어 ‘게임 중독’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게임 질병코드 국내 도입을 위해 무리한 명분 쌓기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중립적·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논란까지 겹치며 해당 보고서는 끝내 폐기됐다.

이번에 발표한 보완 연구에서 연구진은 논란의 연구에서 만든 조사 도구의 중립성과 타당성이 부재하다면서 “개발과정의 원자료 부재, 진단지침 내용에 충실하지 않은 임의적 문항 구성, 대표성이 확인되지 않은 집단의 문항개발 활용, 민감도, 특이도 검증 및 변별타당도 검증이 되지 않은 점 등이 복합적으로 (문제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연구진은 해당 진단 도구대로 조사하면 게임을 단순히 즐기는 사람을 위험군 환자로 오인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위험군으로 구분된 사람은 실제로 병리적인 게임 중독자가 아닌, 진지한 여가 참여자(마니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단순 중독자는 생활 만족도가 떨어지지만 게임 이용자는 다소 몰입도가 높더라도 생활 만족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연구진은 “게이머를 게임이용장애 위험군으로 구분하는 거짓 양성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확인했다”고 전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19년 5월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로 등재하는 ICD-11를 발표했으나 관련 업계에서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지난해 개정 버전을 통해 진단지침을 추가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현행 지침은 지속적으로 보완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찬반 양측의 주장에 대해 이론적, 실증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구진은 게임이용장애의 타당성 검증을 위해 명료한 실태조사 개발, 공론조사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보고서의 자세한 내용은 한국콘텐츠진흥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는 369페이지 분량이다.

한편 현행 통계법에선 한국이 국내표준분류를 작성할 때 국제표준분류를 그대로 반영하도록 되어있다. WHO는 지난 2019년 5월 ‘6C51’라는 코드로 게임이용장애를 등재했는데, 현행법 대로라면 6C51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그대로 올라가게 된다. 이를 막고자 지난해 2월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제표준분류를 무조건 반영해야 하는 현행법의 구속력을 낮추고, 이해관계자와 전문가의 의견수렴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통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