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해인가. 나는 한 사람의 성경통독 강사로서 참여하게 되었다. 성경통독 인도자들이 거의 교회 담임 목사들이기도 해서 미국 집회 시에는 박종면 목사님만 오게 된다.
그래서 샌디에이고 갈보리장로교회(그 당시 담임 한기홍 목사) 성경통독 집회(2회)와 라성빌라델비아교회의 3박 4일 성경통독 집회를 돕게 되었고, 한국집회에도 초청을 받아 함께 하기도 했다.
한번은 한국 집회에 나가서 3박 4일 집회를 세 번이나 연속으로 했다. 그때 성대가 완전히 나가서 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침 살아있는 벌을 가지고 다니시던 한 여자 전도사님이 내 목에다 벌침을 놓아주셨고, 목이 벌겋게 부어오르고 가렵기는 했지만 성대는 회복되었다. 진실로 오늘날 내 성대가 온전할 수 있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나성순복음교회가 부흥하면서 성전은 물론이고 주차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게 되는 바람에 교회를 이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교회에서 성전 이전을 위한 100일 작정 새벽기도를 드렸는데, 그때도 목이 완전히 나가서 아무런 발음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방송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목이 쉬어서 말이 나오든지 아니든지 나는 진실로 그때가 행복했다. 사람이 편하다고, 꼭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는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직통으로 연결된 느낌, 그런 관계가 생성되어 계속되는 시간이야말로 진짜로 행복한 시간들이고 삶이다. 몸이야 어차피 벗어버릴 허물이다. 우리는 애초에 땅에 속한 자들이 아니고 하늘에 속한 자일진대, 목이 쉬고 몸이 좀 고단한 것이 대수랴.
진실로 나는 죽기를 마다치 않는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진실로 내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게 그 일을 하게 하신 거라면. 진짜 문제가 되는 일은 목숨을 내놓고 사역을 하려는 데도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교회와 담임 목사다.
서로가 각자의 받은 은사들을 합해서 하나님을 섬겨야 마땅한 교회에서 “오로지 내 졸병이 되어서 나를 섬기고 나를 떠받들어라!”하는 사람이 그 교회의 지도자라면 그곳은 교회가 아니라 사교 집단일 뿐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교회들이 가끔 존재한다. 나는 힘이 들거나 사례비의 적고 많음이 아니라 마음껏 사역하기를 원한다. 사역을 방해하고 견제하는 지도자와 함께하면서 근근이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나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보호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어떤 사람 자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일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그런 면에서, 세월이 지나갈수록 내가 섬기던 나성순복음교회를 잊을 수가 없다. 첫째, 마음껏 기도를 드리고 원 없이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음은 물론 이모저모로 후원해 주신 김성수 목사님과 당시의 장로님들, 그리고 중보기도 모임을 하고 성경통독/암송 클래스를 할 때 늘 함께 해 주신 김정옥 사모님께 감사한다.
다른 교회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왜들 그렇게 누르고 견제하고 방해하고 그러는지.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기 다른 은사들을 주셨다. 내가 잘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동역자가 들어오면 합력해서 일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밀어붙여서 일을 못 하게 하고 내보내려고 갖은 술수들을 쓴다. 이럴 땐 붙잡고 있으려 해도 뿌리치고 나오는 게 정답이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피차 존중하고 협력해야 함은 당연하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라디아서 1장 10절)
88올림픽 체육관 집회. 아마도 내가 아파서 한국을 방문했던 1993년의 겨울로 생각된다. 그때 나는 54회, 55회에 이어 56회 집회에도 참석했었는데 먼저의 장소들이 바닥이 온돌인 산곡기도원이었다면 56회 집회 장소는 88올림픽체육관이었던듯 싶다.
그때는 날짜도 하루가 줄어서 3박 4일이 아닌 2박 3일 집회였다. 장소가 체육관이라는 것은 염두에 두지 못한 채, 겨울 반코트만 달랑 입고간 나는 2박 3일 동안 그 시멘트 관람석에서 반코트 하나로 견뎌야 했는데, 좀 추운 것이 무슨 상관이랴.
그때, 내가 만나게 된 장면들은 감동 그 자체였다. 겨울방학을 맞은, 이제 국민학교 1, 2학년밖에 안 돼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엄마를 따라서 참석을 했는데 자기들 무릎보다도 더 큰 성경을 무르팍에 올려놓고, 통독 인도 목사님들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아멘!, 아멘!”하고 있었다. 가슴이 뭉클하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세상에…. 한국의 엄마들은 그야말로 믿음의 용사들이다. 도대체 어느 나라 엄마들이 추운 겨울날,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그와 같은 자리에 나올 수가 있을까. 그 장면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분명히 보게 되었다. 뭐가 어떻다 저렇다 말들도 많고 문제들도 많지만, 이보다 더 확실한 소망의 증거들이 있을까.
00 장로교회. 교회 이름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아무튼, 기도원도 아니고 체육관도 아닌 교회 성전에서 성경통독 3박 4일 특수훈련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역시 겨울이었다. 참석한 사람들은 많고 화장실은 제한이 있다 보니 대소변이 얼어붙어서 산을 이루고 있었다. 이미 그 위에 앉을 수조차 없는 높이가 되어 있었다.
도대체 왜, 편한 자기 집을 놔두고 이 겨울에 이 불편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그 마음들 가운데 어떻게 역사를 하셨기에.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은혜가 아니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반대로, 한여름에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차라리 겨울이 더 낫겠다 싶었다. 밥은 하루에 두 끼, 잠도 두서너 시간만 자고 많은 사람이 성전에 그대로 앉아 땀을 흘리면서 성경 말씀을 읽다 보니, 하루 이틀이 지나다 보면 성전에서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사람이 매일 씻어서 그렇지 동물들같이 그렇게 씻지 않고 산다면 동물들보다 더 더러워질 수가 있겠다 하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 보셨지요?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말세에 하나님의 영생 복음을 세계 만민에게 전파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해 주세요.
잠실 화광침례교회. 이때는 특별히 구국 금식기도 및 성경 통독 66권 특수훈련으로 진행되었다. 00 장로교회 지휘자인 내 큰 언니가 참석하였고 막내 남동생이 해준 호박색의 생활 한복을 입고 집회에 임하게 되었다. 자연 옷감이라 그렇게 가볍고 편할 수가 없었다. 이틀이 지날 무렵, 나에게 문제가 발생했다. 거의 기절하게 된 상황에서 자원봉사하시던 권사님들에게 이끌리어 성전 옆 작은 장소로 옮겨졌다. <계속>
◇김승인 목사는 1947년에 태어나 서울 한성여고를 졸업하고 1982년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LA 기술전문대학, Emily Griffith 기술전문대학을 나와 패션 샘플 디자인 등을 했다. 미국 베데스다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북미총회에서 안수받았다. 나성순복음교회에서 행정 비서를 했다. 신앙에세이를 통해 문서선교, 캘리포니아에 있는 복음방송국(KGBC)에서 방송 사역을 했다.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논픽션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했다.
정리=
전병선 미션영상부장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