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의회 폭동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나는 동안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도가 사상 최저치로 곤두박질친 것으로 나타났다. 헌정 사상 최악으로 불리는 정치적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당파적 갈등과 입법·사법·행정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로 오른 탓이다. 미 연방대법원이 의회 폭동 사건에 개입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자격 박탈 여부를 심리키로 해 미국 내 분열과 갈등은 더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갤럽은 6일(현지시간) 최근 여론조사(지난해 12월 1~20일)에서 ‘미국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28%만 동의했다고 밝혔다. 1984년 첫 조사 때(61%)보다 33% 포인트 낮아졌다. 의회 폭동 사건 직후인 2021년 2월 조사(35%) 때보다 오히려 후퇴하며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저 기록을 새로 썼다.
정당별로는 공화당원 만족도가 17%까지 급락했다. 이어 무당파(27%), 민주당원(38%) 등 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공화당원과 무당파, 민주당원 모두 2021년(각 21%, 36%, 47%)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했다.
갤럽은 “최근 2년간의 쇠퇴는 물가 상승에 따른 경제적 불안감, 조 바이든 행정부와 의회 및 대법원에 대한 불만, 정당 간 적대감 증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속적인 정치적 영향력, 투표권과 법원 및 사법 시스템 독립성에 대한 우려 등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만족감이 가장 낮은 시기,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현직 대통령과 유권자들이 거부했던 전직 대통령 간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3년이 지났지만 의회 폭동 사건이 미국 정치에 끼치는 영향은 피할 수 없게 됐다”며 “미국은 그날 일어난 일에 대한 어떤 종류의 합의도 이뤄내지 못하면서 균열이 이전보다 더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의회 폭동 3주기 기념 연설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상대방을 비난하며 갈등을 확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펜실베이니아주 밸리포지 연설에서 “트럼프는 우리 민주주의를 제물로 삼아 권력을 잡으려 한다”며 “2021년 1월 6일 우리는 미국을 거의 잃을 뻔 해고, 트럼프는 선거를 훔치려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역사를 훔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CNN은 “지지율 하락에 고전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주의 보존을 대선 핵심 의제로 선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이오와주 유세에서 바이든 대통령 발언을 ‘애처롭고 공포심을 조장하는 발언’이라고 조롱했다. 또 자신이 미국 역사상 최악의 마피아로 꼽히는 ‘알 카포네’보다 더 많이 기소됐다고 언급하며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6 의회 폭동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을 ‘인질’이라고 부르며 “그들이 감옥에 갇힌 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슬픈 일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방대법원의 트럼프 전 대통령 대선 출마 자격 심리도 대선을 관통할 대형 의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연방대법원은 구두변론을 다음 달 8일로 잡아 이 사건을 신속히 심리할 것임을 시사했다. 보수 우위의 대법관 구조 상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유리할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대체적이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미국 내 정파적 갈등은 심화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