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고위 지도자 살레흐 알 아루리가 이스라엘 드론 폭격으로 사망한 데 이어 이란 내부에서 폭탄 테러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중동 긴장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미국은 이번 사태에 자국이 관련이 없다고 밝히며 확전 자제를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란이나 이란 지원을 받는 무장단체 헤즈볼라 등이 어떤 식으로든 보복 대응할 우려가 제기됐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3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이란 혁명수비대(IRGC) 산하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 4주기 추모식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에 대해 “미국은 이번 일과 관련이 없다”며 “이와 반대되는 어떤 추정도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밝혔다. 밀러 대변인은 또 “이스라엘이 폭발과 연계됐다고 믿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 이스라엘과 연관됐다고 볼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존 커비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추모식 폭발과 관련해 “이스라엘이 어떤 식으로 관련돼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우리는 이 폭발에 대해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아는 단계가 아니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고, 누가 책임이 있는지 등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기념일에 어떤 종류의 폭력 사태가 일어날 것이란 징후도 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커비 조정관은 그러면서 “미국은 중동 지역의 어떤 국가나 행위자와도 갈등을 일으키려 하지 않고,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확대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비공개 브리핑에서 추모식 폭발이 이슬람국가(IS)와 같은 반군 단체 소행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현재로서는 가정이지만, 작전 방식이 테러 공격처럼 보이며 이는 과거 IS가 행했던 것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는 “이란 군사 및 정치지도자들은 폭격 책임을 이스라엘에 돌리기로 신속히 결정했다”며 “테러리스트나 반군 단체가 이번 공격 책임을 주장하더라도 이란은 이스라엘이 이번 공격에 관여했다고 볼 것”이라고 이란 내부 논의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가디언도 “이란 폭탄 테러의 배후가 누구든 지역 전쟁을 촉발할 위험이 있다”며 “건국 이후 최악의 테러 공격에 대해 이란 정권이 어떤 방식으로든 대응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루리 암살에 대한 분노도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미 국방부 관계자는 아루리 사망에 이스라엘군이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이와 관련 밀러 대변인은 “미국은 이번 공격에 대해 사전 경고를 받지 못했다”며 “역내에서 갈등이 고조하는 것은 이스라엘은 물론 헤즈볼라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도 이날 TV 연설에서 아루리 사망에 대해 “우리가 침묵할 수 없는 중대 범죄”라며 “적이 레바논에 대해 전쟁을 벌이려 한다면 우리는 어떤 제한도, 규칙도, 구속도 없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전쟁은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독일, 일본 등 13개국은 이날 예멘의 친이란 반군 세력 후티를 향해 “홍해에서 계속되는 공격은 불법이고 받아들일 수 없다”며 “민간 선박과 해군 함정을 의도적으로 겨냥하는 행위는 법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후티가 계속해서 지역의 중요한 수로에서 생명과 세계 경제, 무역의 자유로운 흐름을 위협한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황준국 주유엔대사는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후티 반군의 무모하고 불법적인 공격에 대해 우려한다”며 “가자지구의 위험한 상황은 다른 지역으로의 연쇄적인 파급효과와 관계 악화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안보리 선출직 비상임 이사국 임기를 시작한 한국은 예멘 제재위원회 의장국을 맡기로 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