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사 현장 ‘피 묻은 안전모’… 관리소장의 조작이었다

입력 2024-01-03 15:03 수정 2024-01-03 15:23
국민일보DB

작업 현장에서 추락사한 근로자가 안전모 없이 작업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안전모에 사망자 피를 묻혀 사고 현장에 몰래 가져다 둔 아파트 관리소장 등 3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의정부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이상훈)는 아파트 관리업체 A사 소속 관리소장 B씨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B씨와 함께 범행 현장 조작 등에 가담한 아파트 전 입주자 대표회장 C씨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해당 업체 직원 수가 약 2400명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 점을 감안해 A사 대표이사 D씨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A사 소속 직원 E씨는 2022년 7월 4일 경기도 양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에서 사다리에 올라가 배관 점검을 하던 중 사다리가 부러지면서 추락했다. 그는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지만, 사고 이튿날 끝내 사망했다.

경찰은 B씨에게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를 적용해 검찰로 송치했다.

하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E씨가 착용했다는 안전모의 혈흔 등이 수상하다고 봤다. 피해자가 추락 후 머리를 크게 다쳐 출혈이 심했던 것에 반해 안전모의 외부에만 피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 결과 E씨는 안전모와 안전대 등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일을 하다가 변을 당했다. B씨와 C씨는 이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전모 외부에 E씨 피를 묻힌 뒤 사고 직후 현장에 둔 것으로 밝혀졌다.

두 사람은 현장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과실이 드러나면 더 큰 처벌과 불이익을 받을 것이 두려워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020년 10월 14일에도 E씨가 사다리 위에서 전등을 갈다 떨어져 6일 동안 입원했으나, 출근부를 정상 출근한 것처럼 조작해 산재보험 처리를 해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후 대표이사 D씨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여부를 조사했고, D씨 역시 지키지 않은 점을 확인하고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보완수사를 통해 단순 산업재해 사망 사건이 아닌 산재 현장 조작 및 은폐 범행을 규명해 검찰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범행을 직접 입건한 첫 번째 사례”라며 “앞으로도 산재 범행에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방유경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