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상(66‧사법연수원 15기) 대법관과 민유숙(58‧사법연수원 18기) 대법관이 6년의 임기를 마치고 대법원을 떠난다. 대법원장 임명 지연으로 후임 대법관 인선 절차가 늦어지면서 두 사람 퇴임 이후 대법관 공백 사태가 현실화할 전망이다.
두 대법관은 29일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사법부의 신뢰를 강조했다. 안 대법관은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진정한 신뢰를 얻을 수 있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민 대법관도 “오늘 우리가 받는 안팎의 도전은 곧 법원이 한 단계 더 도약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안 대법관은 38년의 법관 생활을 마치게 됐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제청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그는 2018년 1월 임기를 시작해 같은 달 법원행정처장에 임명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당시 법원 3차 내부조사를 맡은 특별조사단 단장직을 겸직하기도 했다. 김 전 대법원장 퇴임 후 이균용 전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부결되고 조희대 대법원장이 임명될 때까지 70여일간 선임 대법관으로서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맡기도 했다.
안 대법관은 사법부의 신뢰 회복을 위해선 사법부 독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선 법관이 외부의 부당한 영향이나 내부 간섭을 받지 않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법관의 독립은 국민 기본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일 뿐 법관 개개인의 자유나 안위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사법부의 판단은 최종적인 것으로서 분쟁을 종식시키는 것이 돼야 마땅함에도 우리 사회의 대립과 반목이 심화하면서 사법부의 판단이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할 때도 있다”며 “법관은 부단한 성찰을 통해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보편타당하고 공정한 판단을 해야 하고, 주관적 가치관이 지나치게 재판에 투영되는 것을 늘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안 대법관과 함께 임기를 시작한 민 대법관은 사법부 역사상 첫 여성 영장전담 판사를 지냈다.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그는 다문화가정, 미성년자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판결로 주목을 받았다.
민 대법관은 퇴임사에서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를 강조했다. 민 대법관은 “6년 전 여성 법관으로서의 정체성과 대법관의 새로운 소명을 받아 직무를 시작한 이래 젠더 이슈를 비롯해 사회적 약자에 관한 사건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사회적 분쟁과 갈등이 종국적으로 판단되는 대법원, 특히 전원합의체에서 다뤄지는 사건에서는 다원적 견해와 가치관에 입각한 의견들이 풍성한 논의와 토론을 거침으로써 대법원이 쟁점을 더 세밀하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고 다양한 가치와 대립하는 이해관계 사이 비교형량이 가능해진다”며 “이렇게 도출된 결론은 궁극적으로 사회가 지향하는 통합과 화합의 방향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민 대법관은 최근 대법관 구성이 다양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에 공감하는 취지의 의견도 밝혔다. 그는 “후임 대법관을 포함해 앞으로 성별과 나이, 경력에서 다양한 삶의 환경과 궤적을 가진 대법관들이 상고심을 구성해 대법원이 시대의 흐름을 판결에 반영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로 더 확고하게 자리 잡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장 공백 사태로 후임자 선정 절차가 늦어지면서 두 사람은 후임자 없이 자리를 물러나게 됐다. 조 대법원장 취임 후 시작된 후임자 선정 절차는 현재 천거를 마친 상황으로, 새 대법관 임명은 빨라도 3월에나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법관 공백 사태로 전원합의체 심리와 선고가 어려워 재판 지연도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