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5시간 주6일에 월 16만원…‘폐지 노인’ 4만2000명

입력 2023-12-28 19:00
폐지를 줍는 노인이 28일 손수레에 폐지 수십개를 싣고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의 고물상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관악구 한 빌라에 혼자 사는 박모(73)씨는 매일 새벽 5시에 집을 나선다. 동네를 돌면서 4~5시간 꼬박 폐지와 빈 병을 주워서 하루 2000원가량을 번다. 최근에는 추위에 골목 곳곳이 얼면서 더 천천히 걷다 보니 줍는 폐지 양도 줄었다. 넘어질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며 걸으면서도 기초연금과 폐지 수입이 전부인 박씨는 폐지 줍는 일을 하루도 쉴 수 없다고 했다.

박씨는 20년 전 사업에 실패했다. 빚이 커지면서 가족들은 다 떠났고, 홀로 정신없이 일하며 빚을 겨우 갚았다. 하지만 노년을 버틸 돈을 마련해두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일을 해보려고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일흔이 넘은 내게 일자리를 주는 곳이 없었다”며 “3년 전부터 집에만 있을 수 없어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박씨처럼 전국 폐지 줍는 노인 1035명을 대상으로 일대일 대면조사를 통해 분석한 실태조사 결과를 28일 공개했다. 폐지 노인의 규모와 실태 조사가 이뤄진 건 처음이다. 폐지를 주우며 노년을 보내는 이들은 전국 4만2000명에 달할 것이라는 추계가 나왔다. 복지부는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확인한 고물상 중 105곳을 표본으로 폐지를 납품하는 노인 수를 집계해 전체 규모를 추정했다.

이기일 복지부 제1차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2021년 37.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라며 “폐지 수집 노인은 빈곤 노인의 대표적인 이미지인데도 이들에 대한 규모나 복지 욕구에 대한 파악이 미흡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폐지 수집 노인의 평균 연령은 76세로 남성 비율(57.7%)이 여성보다 높았다. 평균적으로 폐지를 수집하는데 하루 5.4시간을 보냈고, 일주일 평균 6일을 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폐지 수집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은 월 15만9000원이다. 시간당 수입으로 계산해보면 1226원으로, 최저임금의 13% 수준이다.

다른 노인들보다 경제적 수준이 훨씬 열악한 것으로 파악됐다. 폐지수집 노인의 월평균 개인 소득은 74만2000원, 가구 소득은 113만5000원이었다. 2020년 노인실태조사 결과 전체 노인의 개인 소득과 가구 소득 평균이 각각 129만8000원, 252만2000원인 점을 고려하면 폐지수집 노인의 소득은 절반 수준인 셈이다. 생계비 마련을 위해 폐지를 줍는다고 응답한 경우가 54.8%로 가장 많았다.

이들은 노인 일자리와 같은 안정적인 경제 활동을 하기 희망했다. 응답자의 47.3%는 ‘노인 일자리 참여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정부는 전수조사를 통해 인적사항을 파악하고, 이들을 노인 일자리나 복지서비스로 연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 차관은 “노인 일자리의 경우 30시간을 일하면 29만원(2024년 기준)을 받을 수 있다”며 “일대일 상담을 통해 이들이 노인 일자리로 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차민주 김유나 기자 la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