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자 또 승소…나머지 60여건 소송 향방은?

입력 2023-12-28 15:15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인 이경자 할머니가 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강점기 강제노역에 동원된 피해자와 유족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또 최종 승소했다. 현재 전국 법원에 계류된 60여건 강제징용 배상 소송들도 대부분 쟁점이 유사해 줄줄이 승소 확정판결이 날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28일 고(故) 홍순의씨 등 피해자 14명과 유족이 미쓰비시중공업과 히타치조선을 상대로 낸 14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3건을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홍씨 등은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 8~9월 일본 히로시마 군수공장으로 끌려가 노역에 시달렸다. 이듬해 8월 원자폭탄이 투하됐고 피해자들은 부상을 입은채 귀국해 피폭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쟁점은 앞선 강제징용 소송들과 동일했다. 일본 기업 측은 사건이 발생한 지 오랜 시간이 흘러 소멸시효가 만료된 만큼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도 사라져 소송을 낼 수 없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한 심리가 이뤄졌다.

지난 21일 강제징용 소송에서 대법원은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기준으로 일본 기업이 소멸시효 완성을 근거로 배상 책임을 외면하는 것 자체가 권리 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최종적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대법원은 이번에도 2018년 10월 판결 확정 전까지는 청구인들이 객관적으로 본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던 장애 사유가 존재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 이전 시점까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내도 실질적으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2018년 10월 이전 시점인 2013년 7월, 2015년 5월, 2015년 12월 제기된 세 건의 소송도 전부 승소가 확정됐다. 이로써 이날까지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강제징용 소송 8건은 전부 피해자 승소로 결론이 났다.

이 밖에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강제징용 사건은 일본제철과 후지코시 등을 상대로 제기된 4건이다. 2013년 2월, 2015년 4월, 같은 해 5월에 두 건의 소송이 제기돼 일본기업 측의 소멸시효 만료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사건마다 쟁점이 다르고 구체적 내용에 대한 심리가 필요하지만 현재로서는 승소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강제징용 소송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법원 외 전국 법원 1·2심 단계에 있는 강제징용 소송은 60여건으로 추산된다. 2018년 10월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 제기된 소송들은 마찬가지로 승소 판결이 날 가능성이 크지만, 이 중 일부는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소송이 제기됐다.

소송이 어려운 ‘객관적 장애 사유’가 해소된 후에는 ‘상당한 기간’ 내 소송이 제기돼야 적법한 것으로 인정되는데, 법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법원은 통상 6개월 내로 해석해왔다. 이에 따라 ‘상당한 기간’의 범위를 두고 법리적 다툼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강제징용 소송을 담당하는 변호사는 “2018년 10월 이후 제기된 소송 대부분은 전원합의체 판결 후 6개월 안에 제기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