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24년째 이어진 선행이 세밑 한파를 녹이고 있다.
27일 전주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13분쯤 노송동주민센터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중년의 이 남성은 “이레교회 표지판 뒤에 놓았으니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주세요”라고 말했다.
직원들이 현장에서 현금과 돼지저금통, 편지가 든 A4 종이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를 개봉한 결과 안에는 5만원권 묶음과 동전을 포함해 8006만 3980원이 들어있었다. 편지에는 “올 한 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이로써 이 천사가 그동안 기부한 성금은 모두 25차례(2002년엔 두차례 기부), 9억 6479만7670원으로 늘어났다. 성금은 사랑의 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역의 홀로사는 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전주 ‘얼굴없는 천사’는 2000년 4월을 시작으로 연말에 노송동주민센터 옆에 수천만원이 담긴 상자를 몰래 놓고 사라진 사람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선행이 이어지면서 전국에 익명 기부 바이러스가 퍼졌다.
전주시는 이 천사가 보내온 기금으로 지난해까지 생활이 어려운 가정 6578가구에 쌀과 현금, 연탄 등을 선물했다. 노송동에 거주하는 저소득가정 초·중·고교생 자녀들에게 매년 장학금도 주고 있다.
노송동 일대 주민들은 천사의 뜻을 널리 기리고 선행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10월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하고 불우이웃을 돕는 다채로운 나눔과 봉사를 펼쳐오고 있다.
전주시는 그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표지석과 천사기념관도 세웠다. 표지석에는 ‘얼굴 없는 천사여,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2019년에는 성금 상자가 도난 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당시 인근 가게 주인이 수상한 차량의 번호를 적어 놓은 덕분에 5시간만에 절도범을 붙잡았다.
한편 전주 ‘얼굴없는 천사’는 지난 12일 HD현대1%나눔재단이 올해 처음 제정한 HD현대아너상 대상을 받았다. 나눔재단은 노송동 주민센터를 통해 2억원의 상금과 상패를 전달했다. 시는 이 상금을 전액 소외계층 지원 사업에 쓰기로 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