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자연 품은 23년…‘따뜻한 화가’ 김품창 첫 에세이

입력 2023-12-19 17:38 수정 2023-12-19 17:41

따뜻한 시선으로 제주를 캔버스에 담는 화가 김품창씨가 첫 에세이 ‘제주를 품은 창’(사진)을 펴냈다.

창작 활동의 영감을 얻기 위해 가족과 무작정 제주로 와 서귀포에 정착한지 23년만이다. 육지 청년 김품창이 제주사람이 되어가는 일상의 이야기와 그 속에서 자신만의 화풍을 이뤄온 과정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40여점의 작품도 함께 담았다.

그가 제주로 온 건 2001년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장맛비로 세상이 무겁게 젖은’ 어느 7월,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했다. 서른다섯 젊은 화가가 서울에서의 삶의 터전을 모두 버리고, 가족과 함께 제주로 이주한 것이다.

영감을 얻기 위해 제주로 가겠다고는 했지만, 서울에서의 도심생활에 지쳐 있었다. 미술대학 졸업 후 그의 청춘은 돈벌이와 작품활동을 병행하는 전쟁같은 시간이었다.

'어울림의 공간-제주 환상', 2022년작

제주에서의 삶도 생계가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무엇이든 해보려 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자리 등에 여러 차례 이력서를 냈지만, 연락도 오지 않고 받아주는 곳도 없었다. 그럴 땐 육지사람이라 그런가 하는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제주는 분명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곳이었다.

남원 집에서 온 가족이 밥을 먹다 바다 위로 뭔가 지나는 것을 보았다. 돌고래였다. 돌고래를 눈앞에서 보다니 믿을 수 없었다.

바다에서 잡은 고둥과 문어, 구멍이 숭숭난 현무암, 거센 바람. 일상에서 보는 무엇 하나도 생명력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없었다.

삶의 공간에서 그와 공존하는 모든 자연물들은 그대로 그의 화폭에 옮겨졌다. 유영하는 돌고래, 눈이 달린 문어와 나무, 사람과 동물의 형상을 한 산과 땅의 모습이 그렇다.

'어울림의 공간-제주 환상', 2020년작

청년이 장년이 되는 시간 동안 그는 첫 개인전을 열고, 첫 작업실을 마련한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의 감격스러웠던 전시, 점차 작가로서 자리를 굳혀가는 과정에서 그가 겪고 느낀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작가는 어린시절 강원도 영월에서 자랐다.

밤마다 보았던 별빛이 지금도 생생하다. 전기가 없던 마을이라 별들은 마치 은가루를 뿌린 듯 눈이 시리게 빛났다.

이후 작가는 진폐증이 걸린 아버지 치료를 위해 외가가 있는 경북 영주로 둥지를 옮기지만, 어쩌면 자연에 대한 그의 경외와 깊은 애정은 그때 그의 가슴에 각인됐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화가의 길만이 아니라 제주에서의 삶도 그에겐 운명이 아닐까. 그는 “화가의 길이 늘 어려웠다. 하지만 붓을 꺾어도 매번 다시 잡는 것을 보면 이제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내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생각마저 든다”며 “한 해 한 해 제주에서 살아온 시간을 에세이를 통해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