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협박에 ‘극단적 선택’ 기간제교사 아버지가 참아온 눈물

입력 2023-12-15 16:01 수정 2023-12-15 16:13
15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올해 1월 사망한 상명대부속초 기간제 교사의 아버지가 법률대리인의 발언을 듣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극단적 선택을 한 상명대부속초 기간제교사 오모씨가 학부모의 지속적인 협박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다가 학교를 그만둔 지 5개월여 만에 사망에 이른 것으로 인정됐다. 오씨는 당시 초임교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저학년 담임을 맡아 밤낮없이 학부모 민원 업무에 시달렸던 것으로 조사됐다. 부친 오재근(63)씨는 “딸처럼 고통받는 분들이 ‘미워하는 사람들은 금방 떠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평생 곁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고 마음을 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센터는 15일 부친 오씨와 ‘상명대부속초 사망 기간제 교사 유가족 입장발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학부모의 과도한 항의와 협박성 발언으로 고인이 우울증 진단과 치료를 받다가 사망에 이른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부친 오씨가 지난 7월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열린 교직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내 딸도 똑같이 죽었다”며 딸의 사망을 알리면서 시작됐다.

부친 오씨는 “딸에게 생전에 ‘사랑한다’ 자주 말하지 못했다. 한스럽고 원통한 마음을 풀 수가 없었다”며 “학교와 딸에게 협박성 발언을 했던 학부모에게 법률대리인을 통해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또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급여신청서를 접수할 계획이다.

상명대부속초 기간제교사 고(故) 오모씨가 지난해 12월 7일 작성한 일기 내용. 유족 측 제공

이날 발표한 서울시교육청 자체 감사에 따르면, 고인은 입직 초기인 지난해 3월부터 저학년 담임을 맡았다. 그는 퇴근 후와 주말에도 학부모들의 요구와 민원을 학교 측에서 공개한 개인 휴대전화로 일일이 응대해야 했다.

특히 고인은 지난해 6월 반 학생 간의 다툼을 학부모에게 알리는 과정에서 협박성 발언과 항의성 민원에 시달렸다. 그는 교실을 비운 사이 벌어진 일을 파악을 위해 해당 학생들에게 갈등 상황을 재연하게 해 영상을 찍고,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아버지에게 이를 공유했다. 이로 인해 가해 학생 학부모로부터 “우리 아이만 잘못한 게 아니다”라며 일주일 동안 지속해서 항의와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유족 측에 따르면, 고인은 재연 영상을 찍었던 것을 계속 후회하고 있었다. 부친 오씨는 “딸이 주변 지인교사들로부터 ‘네가 잘못한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내가 (학부모에게) 무릎이라도 꿇어야하나’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은 고인의 행동이 초임교사로서 밤낮없는 학부모 민원을 홀로 감당하던 중 ‘정확히 알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벌어진 일이라고 봤다. 법무법인 생명 정진아 변호사는 “과도한 업무 부담과 민원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교사를 관리하는 업무 시스템이 해당 학교에 전혀 없었다”며 “심지어 학교는 교사 개인번호를 학부모에게 공공연하게 알려왔는데, 지난 9월 교육청 감사 직전에야 이를 중단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이후 병가를 내고 정신과 병원을 찾아 사망 직전까지 정신병적 장애와 우울증 치료를 받다가 끝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날 공개한 고인의 일기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7일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잖아. 봄날이 올 거야”, 사망 보름여 전인 지난 1월 1일 “내일 ○○초 면접에 가야겠다. 기회가 있음에 늘 감사드린다”고 적혀있었다.

학교 측은 학생 간 갈등 재연 영상을 받은 학부모가 항의성 민원을 학교에 제기하자, 동료 교사에게 고인의 일을 도우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러한 정황 등을 고려해 “학교와 관리자들의 법령 위반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교사에게 조기 출근 등을 요구하는 등 교직원 근무시간을 부적절하게 운영한 사실에 대해 시정을 요구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