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A 기분나빠”… 한국 대신 일본 가는 동남아인, 왜?

입력 2023-12-15 13:10 수정 2023-12-15 13:14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윤웅기자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오는 해외 여행객들의 한국 입국이 불발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한국 전자여행허가(K-ETA) 승인을 받지 못해서다. 이들은 까다로운 한국의 여행 허가제도에 불만을 품고 일본, 중국 등 타국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15일 관광업계에 따르면 올해 1~10월 기준 한국을 찾는 동남아 주요 7개국(말레이시아·홍콩·필리핀·베트남·태국·싱가포르·인도네시아) 관광객은 전체의 21.4%에 달한다. 2019년까지만 해도 18.6%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일본(20.8%) 중국(17.4%)을 뛰어넘었다.

동남아인들의 한국 관광이 잦아지고 있지만 까다로운 여행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 발목을 잡고 있다. 사전입국심사 시스템인 K-ETA는 불법체류자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 9월 도입된 제도다. 하지만 불체자에 대응하면서 외국인 관광객 입국을 돕는다는 취지와 달리 현재는 깐깐한 심사 탓에 동남아 관광객들의 입국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남아인들은 K-ETA 불허 판정이 나면 한국에 입국할 수 없다. 3번 거부되면 별도로 비자 신청을 해야 하는데, 거절 사유가 명시되지 않으니 무엇을 보완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한 동남아 전문 여행사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입국이 까다로운 한국에 대한 반감이 커지자 ‘기분 나빠서’ 일본으로 목적지를 변경한다는 단체도 있었다”며 “겨울을 맞아 한국에 눈을 보려는 동남아 여행객들이 늘어나는 시기에 K-ETA가 악재가 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외국인 입국을 돕기 위해 나서고 있다. 당초 중국인 관광객에게만 한시적으로 적용되던 단체 비자 수수료 면제 혜택을 필리핀·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주요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다만 1만8000원 수준의 수수료 면제 혜택이 실질적으로 관광객 유인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없는 것보다는 나은 낫지만, 이미 한국에 실망해 일본 등으로 눈을 돌린 외국인들을 사로잡을 만큼의 혜택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관광업계에서는 K-ETA를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호소하지만 아직 뚜렷한 변화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출입국 업무를 총괄하는 법무부는 ‘불체자가 늘어나면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나친 불체자 관리가 방한 의욕을 꺾는 요소가 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한다. 일단 부정적 인식이 박히면 이를 제거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동남아 전문 여행사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즐거운 여행의 전제 조건은 ‘따뜻한 환대’인데 시작 전부터 입국 걱정을 하게 만들면 누가 오겠는가”라며 “한국을 좋아해서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을 잠재적 불법 체류자로 차갑게 바라보는 태도가 계속되면 심리적 장벽이 높아지고, 결국 주요 시장으로 자리한 동남아 관광객의 방한 기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