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년 전 ‘헤이그 특사’ 발자취 찾은 尹… 韓 정상 중 처음

입력 2023-12-14 00:26 수정 2023-12-14 06:26
네덜란드를 국빈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헤이그의 이준 열사 기념관을 찾아 작성한 방명록. 헤이그=김지훈 기자

네덜란드를 국빈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헤이그에서 마크 루터 네덜란드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드 용(De Jong) 호텔을 찾았다. 이곳은 116년 전 고종황제의 특사로서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에 왔던 이준 열사가 순국한 장소다. 현재는 기념관이 세워져 유럽 내에 유일한 한국 독립운동의 유적지가 돼 있다.

윤 대통령은 “이준 열사의 위국 헌신을 잊지 않고 위대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방명록을 남겼다. 윤 대통령은 이준 열사가 묵었던 방과 침대, 고종황제가 수여했던 특사 신임장 등 전시물을 관람했다. 한국 대통령의 이준 열사 기념관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준 열사 기념관에 앞서 1907년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역사적 건물인 ‘리더잘’(기사의 전당)도 찾았다. 이준·이상설·이위종 특사가 파견됐지만 일제의 방해로 정작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곳이었다.
네덜란드를 국빈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마크 루터 총리와 함께 헤이그 리더잘을 방문, 리더잘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을 관람하며 설명을 듣고 있다. 헤이그=김지훈 기자

바일로스-하프캄프 네덜란드 국유재산공사 재정운영자문국 관리소장이 윤 대통령을 맞이하고 리더잘의 역사를 설명했다. 건물 강당에는 리더잘의 옛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 5장이 전시돼 있었다. 벤야민 듀어 네덜란드 외교부 서부사하라국 선임담당관이 이 사진들에 대해 약 10분간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들었다.

네덜란드 정부의 주요 연설과 행사는 아직도 리더잘에서 열린다고 한다. 이 건물은 현재 개보수 작업이 진행돼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네덜란드 측은 한국의 주권 회복 역사에서 이 건물이 지닌 의미를 이해하고 국빈인 윤 대통령에게 리더잘을 공개했다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밝혔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이준 열사 기념관 등 ‘헤이그 특사’ 유적지 방문에 이번 네덜란드 국빈방문의 또다른 의미가 담겼다고 했다. 116년 전엔 황제의 특사가 회의장에 들어설 수조차 없었던 나라가, 이젠 반도체 초격차를 위해 네덜란드와 동맹을 구축할 만큼 성장했음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애초 마크 루터 총리와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가기로 한 일정을 취소하고 리더잘 방문을 선택했다. 대통령실은 “한국이 원하고 ‘의미 있는 일정’을 협의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헤이그=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