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총선이 13일로, 119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과거에는 쇄신을 주도했던 초선의원들이 이제는 권력의 ‘홍위병’이 됐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서 불출마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초선의원들도 인적 쇄신의 ‘타깃’이 되는 분위기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였던 홍준표 대구시장은 13일 페이스북에 “초선은 늘 정풍 운동의 중심이었는데 이 당은 일부 초선조차도 완장 차고 날뛸 정도로 당이 망가져 버렸다”라며 “그런 당에서 쇄신 공천이 가능할까”라는 글을 올렸다.
국민의힘 한 중진의원은 통화에서 “예전에는 당의 고비 때마다 초선들이 겁 없이 바른말을 하며 정국에 신선함을 불어넣었다”면서 “그러나 지금 국민의힘 다수 초선들은 친윤(친윤석열) 호위무사들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당 지도부와 친윤계뿐만 아니라 초선의원들에 대해서도 불출마 등 인적 쇄신 압박이 가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친박(친박근혜)계가 주도했던 2012년 19대 총선 이후 공천이 당 기득권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할 말 하는’ 초선들이 사라진 것”이라며 “권력 ‘홍위병’ 노릇을 하는 사람에게 주요 보직을 맡기거나 공천을 주는데 누가 나서서 쓴소리를 하겠나”라고 말했다.
21대 국민의힘 초선, 개혁 대신 ‘권력 엄호’ 택했다
지난 11일 국민의힘 의원 단체 대화방이 술렁였다.
서병수·하태경 의원 등 비윤(비윤석열)계 중진 의원들이 ‘김기현 사퇴론’을 띄운 직후였다.
당시 친윤계 초선의원들은 이들을 향해 “김기현 지도부를 흔들지 말라”며 날을 세웠다고 한다.
초선의원들은 서병수·하태경 의원 등을 향해 ‘자살특공대’, ‘퇴출대상자’, ‘내부총질’, ‘엑스맨’ 등의 거친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지난 3·8 전당대회를 두 달 앞두고 초선의원들이 나경원 전 의원의 당 대표자 불출마를 촉구했던 때가 떠오른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1월 중순 초선의원 48명은 ‘윤심’(尹心) 을 얻은 김 대표를 밀기 위해 유력 후보였던 나 전 의원의 불출마를 촉구하는 연판장을 돌렸다.
‘국민의힘 흑역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판 여론이 거셌지만 이 같은 상황이 11개월 만에 재현된 것이다.
국민의힘 수도권 의원은 “개혁을 향하던 ‘초선의 반란’이 21대 들어서는 권력을 지키는 데 활용된 것”이라며 “가장 혁신적이고 과감해야 할 초선들이 권력의 눈치만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역대 초선들은 당의 중요 국면마다 등장해 개혁적인 방향으로 기류를 바꾸는 역할을 해왔다.
16대 국회 당시 남경필·원희룡·정병국(남원정) 전 의원들이 주도한 ‘미래연대’가 대표적이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이회창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총재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미래연대는 유일하게 그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미래연대가 일명 ‘차떼기 파동’으로 당이 휘청거리던 당시 세대교체를 거세게 요구했던 건 지금까지 회자된다.
박 전 대통령의 ‘천막당사’ 역시 남·원·정이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18대 국회 당시 김선동·김영우·정태근·주광덕 전 의원이 만든 ‘민본21’은 ‘여당 내 야당’으로 불릴 정도로 개혁적인 성향을 띄었다.
특히 2010년 6월 2일 치른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이후 당·정·청의 전면개편을 요구하며 ‘연판장 돌리기’에 나섰는데, 당시 초선의원 89명 중 절반 이상이 서명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후퇴를 강하게 압박한 것도 민본21이었다.
이를 주도했던 정태근 전 의원은 “당에서 초선이 중요한 이유는 정치에 입문하고자 했던 소명 의식이 건강하게 살아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대 국회에는 ‘아침소리’, 20대 국회에서 ‘새벽’이 결성됐었지만, 이전만큼 존재감을 드러내진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 전 의원은 “예전에는 초선들이 개혁 목소리를 내기 위해 공부 모임을 만드는 등 ‘세력’을 형성했었지만 19대를 지나면서 그런 문화는 거의 사라졌다”라며 “정치를 하고자 하는 공적인 소명 의식이 사라졌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계파 갈등·여야 정쟁으로 사라진 ‘소장파 초선’
소장파 초선 모임이 사라진 건 당내 계파 갈등이 심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친이(친이명박)계 출신 인사는 “19대 때부터 친이계와 친박(친박근혜)계로 갈라진 계파 정치가 본격화된 이후 소장파의 개혁 목소리가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자신이 속한 계파를 엄호하기 바빠 정작 당을 향한 쇄신 요구가 실종됐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극심해진 여야 정쟁이 당내 개혁 목소리를 잡아 삼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전보다 여야 갈등 상황이 매우 심화하면서 ‘야당을 비판하기도 바쁜데 우리끼리 내부 총질해서 되겠느냐’는 인식이 팽배해져 소장파 자체가 사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천 시즌마다 ‘물갈이 대상’으로 꼽히는 영남권 의원이 많아진 것도 초선들의 운신 폭을 좁힌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예전과 달리 지금은 초선 대다수가 공천이 아슬아슬한 영남권이거나 비례이기 때문에 소신껏 발언할 수 없는 지형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의원 단체 대화방에서 ‘김기현 지도부’ 엄호 목소리를 낸 의원들은 대부분 영남권 의원이었다.
박성민(울산 중구), 전봉민(부산 수영구), 양금희(대구 북구갑), 윤두현(경북 경산), 이인선(대구 수성을) 의원 등이 서병수·하태경 의원 등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모두 ‘나 전 의원 연판장 사태’ 당시 서명했던 의원들이다.
이들은 지역구가 영남이라 지도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