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韓 등 동맹과 새로운 다자 수출통제체제 추진

입력 2023-12-13 06:15

미국 고위당국자가 첨단기술 수출통제를 위해 한국을 포함한 동맹과 새로운 다자 체제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중국 등 적대국을 막기 위해 동맹을 중심으로 기술 저지선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수출통제를 총괄하는 엘렌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12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경제안보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기존 수출통제 체제, 특히 바세나르가 기술이 변화하는 속도만큼 빠르게 운영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양자 속도(quantum speed)로 행동하는 수출통제 체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와 동맹들은 우리를 적들로부터 보호하고, 기술을 관리하기 위해 그런(빠른) 속도로 행동할 수 있는 수출통제 체제를 어떻게 구축할지를 논의해왔다”며 “그런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도 지난 2일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레이건 국방 포럼에서 “중국은 매일 우리 수출통제를 우회할 방법을 찾으려 한다”며 냉전시대 대공산권 전략물자 수출통제 기구인 코콤(COCOM)같은 다자주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콤은 냉전시대가 와해하면서 현재의 바세나르 체제로 대체됐다. 바세나르는 제재 대상을 국제평화나 지역 안전을 저해할 모든 우려국으로 지정하고, 군사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 품목과 재래식 무기 확산을 통제 대상으로 정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42개국이 참여해 결정 속도가 느리고, 합의제로 운영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에스테베스 차관은 새로운 다자 체제와 관련 “기술이나 이를 개발할 능력을 갖춘 국가들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통제 체제가 필요하다”며 반도체 동맹을 언급했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칩이나 관련 장비를 실제 만드는 국가가 많지 않아 이들 국가가 새 수출통제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스테베스 차관은 특히 “몇 안 되는 국가가 첨단 양자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는데, 한국도 그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도 새로운 수출통제에 대해 논의하는 동맹에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한국의 참여 없이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한국의 참여 없이는 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곤잘로 수아레스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국 부차관보도 “한국과 같은 역내 국가가 한국에서 생산된 민감한 품목이 중국의 군사 현대화 프로그램에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한국과 미국처럼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협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김영재 주미한국대사관 경제공사는 이날 행사에서 미국 정부가 중국에 있는 모든 기업을 ‘외국 우려기업’(FEOC)으로 정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 지침에 대해 “현실을 완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듯하다. 2025년까지 중국에서 조달한 광물을 완전히 제거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견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더 현실적인 접근을 하는 게 나을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이해관계자들이 그냥 (보조금을) 포기하고 저렴한 광물을 조달하기 위해 계속 중국에 의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