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봄 보고 왔어요” 김오랑 묘에 헌화한 아이들

입력 2023-12-12 16:54 수정 2023-12-12 18:04
12·12 군사반란 44주년인 12일 국립서울현충원 29번 묘역에 안장된 전사자 고(故) 김오랑 중령 묘를 찾아온 신모(왼쪽)군과 유모군.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이 있었는데 영화 ‘서울의 봄’을 계기로 현충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2·12 군사반란 44주년인 12일 서울 서초구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유모(17)군은 국립서울현충원 29번 묘역에 안장된 전사자 고(故) 김오랑 중령 묘를 찾아 이렇게 말했다.

유군과 함께 묘역을 찾은 친구 신모(17)군도 김 중령 묘 재단에 국화꽃을 놓으며 “시험 끝나자마자 찾아왔다. (김 중령은) 의롭게 마지막까지 상관을 지키다 돌아가신 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중령은 반란군에게 전세가 기운 상황에서도 상관인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을 지키다 전사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선 배우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으로 나온다.

이날 김 중령 묘역에선 김오랑추모사업회의 조촐한 추모식이 열렸다. 이들은 추모식 이후 첫 방문객이었다. 유군은 “김 중령이 지난해에서야 전사자로 인정됐다고 들었다. 앞으로 (명예)회복이 되고 과거사도 바로잡힐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치된 고(故) 정선엽 병장 묘를 12일 찾아온 정 병장의 누나 정영음(왼쪽)씨와 정정자씨.

일반병사 8번 묘역에 있는 고(故) 정선엽 병장 묘에는 김오랑추모사업회 관계자들과 함께 정 병장의 누나 둘이 찾아왔다.

정 병장의 작은누나 정영임(74)씨는 묘비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동생은) 정말 착한 아이였다. 유학 가려고 준비 중이었는데”라며 “동생이 죽고 나서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어서 장례식도 늦게 치렀다. 가족들이 이 일로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고(故) 정선엽 병장 묘 뒷편 '순직'에서 '전사'로 바뀐 글귀.

정씨는 “전사했는데도 43년 동안 애매하게 순직이라고 해왔다. 그나마 이제 전사로 인정돼 마음이 놓인다”고 덧붙였다. 정 병장 묘비 뒤편에는 ‘1979년 12월 13일 서울 전사’라고 적혀있었다. 지난 6월 유족들의 신청 절차를 통해 ‘순직’에서 ‘전사’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정 병장의 큰누나 정정자(79)씨는 “동생이 다니던 조선대에서 내일 명예졸업장을 준다고 한다. ‘이제야 내 동생이 대접을 받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며 “동생에게 ‘이제 나라에서 인정을 받았으니 괜찮다. 곧 하늘나라에서 만나자’고 말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2·12 군사반란에 성공하고 이틀 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등 쿠데타 주요인물이 국군보안사령부 건물 앞에서 찍은 기념 사진. 왼쪽 노란색 원부터 최예섭 보안사 기조실장, 이상연 보안사 감찰실장, 백운택 71방위사단장.

국립서울현충원에는 두 사람 외에 12·12 군사반란 주요인물들의 묘가 있다. 백운택 71방위사단장과 최예섭 보안사 기조실장, 이상연 보안사 감찰실장이다. 이들은 군사 쿠데타에 성공하고 이틀 뒤 국군보안사령부 건물 앞에서 찍은 사진에도 등장한다. 백 사단장은 사진 촬영 현장엔 없었으나 이후 별도 합성 작업을 통해 사진에 등장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육사 11기 동기였던 백 사단장 묘에는 “나라와 겨레 지키는 일에 평생을 바치고 민주정의 수호의 굳건한…”이라고 적혀있었다.

지난 4월 15일 서울에서 사망 후 화랑무공훈장을 받고 충혼당에 안치된 이 실장은 노태우정부 때 국가보훈처장과 내무부장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과 국가안전기획부장 등을 역임했다. 말년에는 국정원 퇴직자 단체인 양지회 전 회장을 맡았다. 그는 국정원 ‘댓글 부대 관리’ 사건에 연루돼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받기도 했다.

글·사진=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