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에 관심이 있었는데 영화 ‘서울의 봄’을 계기로 현충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2·12 군사반란 44주년인 12일 서울 서초구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유모(17)군은 국립서울현충원 29번 묘역에 안장된 전사자 고(故) 김오랑 중령 묘를 찾아 이렇게 말했다.
유군과 함께 묘역을 찾은 친구 신모(17)군도 김 중령 묘 재단에 국화꽃을 놓으며 “시험 끝나자마자 찾아왔다. (김 중령은) 의롭게 마지막까지 상관을 지키다 돌아가신 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중령은 반란군에게 전세가 기운 상황에서도 상관인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을 지키다 전사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선 배우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으로 나온다.
이날 김 중령 묘역에선 김오랑추모사업회의 조촐한 추모식이 열렸다. 이들은 추모식 이후 첫 방문객이었다. 유군은 “김 중령이 지난해에서야 전사자로 인정됐다고 들었다. 앞으로 (명예)회복이 되고 과거사도 바로잡힐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반병사 8번 묘역에 있는 고(故) 정선엽 병장 묘에는 김오랑추모사업회 관계자들과 함께 정 병장의 누나 둘이 찾아왔다.
정 병장의 작은누나 정영임(74)씨는 묘비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동생은) 정말 착한 아이였다. 유학 가려고 준비 중이었는데”라며 “동생이 죽고 나서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어서 장례식도 늦게 치렀다. 가족들이 이 일로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전사했는데도 43년 동안 애매하게 순직이라고 해왔다. 그나마 이제 전사로 인정돼 마음이 놓인다”고 덧붙였다. 정 병장 묘비 뒤편에는 ‘1979년 12월 13일 서울 전사’라고 적혀있었다. 지난 6월 유족들의 신청 절차를 통해 ‘순직’에서 ‘전사’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정 병장의 큰누나 정정자(79)씨는 “동생이 다니던 조선대에서 내일 명예졸업장을 준다고 한다. ‘이제야 내 동생이 대접을 받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며 “동생에게 ‘이제 나라에서 인정을 받았으니 괜찮다. 곧 하늘나라에서 만나자’고 말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국립서울현충원에는 두 사람 외에 12·12 군사반란 주요인물들의 묘가 있다. 백운택 71방위사단장과 최예섭 보안사 기조실장, 이상연 보안사 감찰실장이다. 이들은 군사 쿠데타에 성공하고 이틀 뒤 국군보안사령부 건물 앞에서 찍은 사진에도 등장한다. 백 사단장은 사진 촬영 현장엔 없었으나 이후 별도 합성 작업을 통해 사진에 등장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육사 11기 동기였던 백 사단장 묘에는 “나라와 겨레 지키는 일에 평생을 바치고 민주정의 수호의 굳건한…”이라고 적혀있었다.
지난 4월 15일 서울에서 사망 후 화랑무공훈장을 받고 충혼당에 안치된 이 실장은 노태우정부 때 국가보훈처장과 내무부장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과 국가안전기획부장 등을 역임했다. 말년에는 국정원 퇴직자 단체인 양지회 전 회장을 맡았다. 그는 국정원 ‘댓글 부대 관리’ 사건에 연루돼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받기도 했다.
글·사진=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