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전두환)이 이끄는 ‘정치군인’에 맞서 목숨을 걸고 육군본부 벙커를 지키다 숨진 조민병(고 정선엽) 병장의 추모식과 명예 졸업장 수여식이 잇따라 열린다.
군사반란에 맞서 저항하다가 산화한 12·12사태 희생자 2명 중 1명이다. 당시 반란군 측에서도 1명이 숨졌다.
광주 동신고 총동창회는 “12·12 당일인 12일 모교 체육관 옆 정선엽 소나무 앞에서 고 정 병장의 추모식을 치른다”고 11일 밝혔다.
그날 이후 40년 넘게 고인을 기억해 온 학우들은 의협심이 많아 그동안 ‘제2의 김오랑 중령’으로 불린 고 정 병장을 기르는 기념식수를 6년 전 초라하게 진행한 바 있다.
고 정 병장과 동문수학한 학우와 영화를 본 후배들은 “고 김 중령처럼 훈장이 추서돼야 마땅하다”는 일치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최근 제51차 정기회의에서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으로 비서실장으로서 12·12 당시 반란군에 의해 살해된 김오랑 중령(당시 소령) 사건에 대해 직권조사를 결정했다.
그는 정 사령관을 체포하러 무장한 채 들이닥친 신군부 제3공수여단 병력에 맞서 총격전을 벌이다 숨졌다.
김 중령과 같이 12·12 군사반란 과정에서 사망한 고 정 병장은 당시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연결하는 지하벙커 초소를 지키다 반란군의 총탄에 맞아 숨을 거뒀다.
1979년 12월 13일 새벽 23살의 꽃다운 나이이던 그는 만기 제대를 불과 3개월 앞둬 ‘열외’가 가능했지만 초소근무에 익숙하지 않는 부하 분대원들을 돕기 위해 자원해 근무를 서던 불의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이에 따라 정 병장의 동문들은 안타깝게 산화한 고인을 추모하는 모임을 개별적으로 가져왔다. 하지만 총동창회 명의로 추도식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군부에게 ‘미운털’이 박힌 탓에 그동안 초라한 추모식을 가질 수 밖에 없어던 동문들은 영화 ‘서울의 봄’이 정 병장의 참다운 군인정신과 절개가 널리 알린 것을 계기로 그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기 위해 추도식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 병장 동문들은 2017년 동신고 운동장에 정 병장 기념식수를 한 바 있다.
동문들은 당시 정 병장 기념식수뿐 아니라 여러 추모사업을 구상했으나 사회적 관심이 적은 탓에 ‘동력’이 확보되지 않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기억했다.
국회의원 등 정치권에 호소했으나 아무도 별다른 관심이나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기념식수 행사를 주도한 정 병장의 1년 선배 김모씨(68)는 “기골이 장대하고 의협심이 강한 선엽이는 학창시절 학도호국단과 흥사단으로 활동하면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며 “김오랑 소령은 1990년 중령 추서 이후 2012년 보국훈장이 수여됐으나 선엽이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영화 ‘서울의 봄’으로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선엽이가 44년 만에 다시 조명을 받게 돼 기쁘지만 거룩한 희생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게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정 병장의 동신고 동문들은 40여 년간 순직으로 기록해온 정 병장의 군 기록을 바로잡기도 했다.
이들은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고 지난 9월 발표된 군사망위 종합활동 보고서에서 정 병장의 죽음은 40여년 만에 총기사고에 의한 ‘순직자’에서 반란군에 저항다가 숨진 ‘전사자’로 뒤늦게 사망구분이 변경됐다.
단순한 ‘오발탄’에 의해 숨진 것으로 기록됐던 정 병장의 명예회복이 첫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정 병장이 고교졸업 직후 대학생활을 시작한 조선대는 명예졸업장 수여를 추진 중이다. 정 병장은 1956년생으로 1977년 조선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가 곧바로 병영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했다.
조선대는 명예졸업장 수여를 위해 정 병장의 유족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대학은 단과대 교수회의 등을 거쳐 명예졸업장을 수여할 계획이다.
대학 측은 내년 1월쯤 명예졸업장 수여 여부가 결정되고 2월 졸업식에서 유족에게 수여하게 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선대와 ‘서울의 봄’의 남다른 인연도 새삼 거론되고 있다. 영화에서 배우 정우성이 열연한 ‘애국 군인’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은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장 사령관이 바로 조선대 출신이다.
1931년생인 장태완은 대구 상고를 졸업하고 6·25가 발발하자 19살의 나이로 육군종합학교에 갑종 장교로 지원, 소위로 임관했다.
대학에 가지 못한 채 향학열을 불태운 그는 1952년 광주에 군사교육총감부가 설치되고, 조선대가 위관·영관 장교 위탁 교육을 맡게되자 법학과 학위를 받았다.
조선대 본관 복도는 영화 속 이태신 역의 정우성과 전두광 역의 황정민이 정면으로 처음 대치하는 긴장감 높은 장면이 다수 촬영된 현장이기도 하다.
이 대학 지하대피소는 육군본부 B2벙커로 영화 속에서 등장한다. 뿐만아니라 본관 중앙계단은 4공수 대원들이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러 가는 길목으로 영상 속에 나온다.
조선대 관계자는 “반란군을 막기 위해 몸을 던진 고 정선엽 병장의 참된 군인 정신을 기리고자 명예졸업장을 수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