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연금 합계 5487냥에서 4539냥7전5푼은 불탄 화물 가격으로 나눠 구휼했고…’ 1900년 세워진 대구 ‘의연공덕비’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길거리에 세워져 있던 의연공덕비가 이제 대구근대역사관에서 중요한 사료로 대접을 받게 됐다.
대구근대역사관은 최근 대한제국 당시 대구의 기부문화를 알 수 있는 ‘의연공덕비’를 기증받았다고 11일 밝혔다.
의연공덕비는 대한제국 광무4년인 1900년에 세운 것으로 대구에서 일어난 큰 화재로 손해를 입은 가게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의연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과 의연금 사용 내역 등이 기록돼 있다. 경상도관찰사 김직현 1000냥, 참봉 서자후 50냥, 초재방(한약업 단체) 200냥 등 자세하게 기록돼 있어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 이번에 기증받은 비는 대구에서 실물로 확인된 최초의 의연공덕비다.
이 비가 대구근대역사관으로 오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고 대구근대역사관 측은 설명했다. 2003년 박순동 회장(구 인보당한약방 운영)이 대구 중구 성내동 소재 민가의 마당에서 마루로 올라가는 디딤돌로 사용되던 비를 발견했고 집주인을 설득해 비를 양도받아 인보당한약방 앞에 세워뒀다. 인보당한약방이 2013년 모던다방으로 바뀌었지만 의연공덕비는 계속 같은 자리를 지켰다.
평소 이 비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김용익 전 계성고등학교 역사교사와 이문기 경북대 명예교수는 2022년 비문을 판독해 이 비가 의연공덕비임을 파악했다. 이를 계기로 지역사회에 비석의 가치와 중요성이 알려졌고 박순동 회장의 아들 박재석씨가 기증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박씨는 지난달 기증 당시 “소중한 유물이 대구 공립박물관의 보호 속에서 지역사 자료로 널리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구근대역사관은 최근 기증 절차를 완료하고 기증자에게 기증 증서를 발급했다. 기증자 명예의 전당에 기증자 이름을 올리는 등 예우 절차도 진행했다. 대구근대역사관 1층 상설전시실에서 비석이 공개되고 있다. 판독문과 번역문, 설명문도 만들어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향후 대구시 지정 문화재로도 신청할 계획이다.
신형석 대구문화예술진흥원 박물관운영본부장은 “의연공덕비는 대구 근대사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유물”이라며 “앞으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에게 비석의 의미를 알리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근대역사관은 올해 하반기 의연공덕비 이외에도 헌릉참봉임명장(칙명), 근대 보험증서·국채·졸업장 등을 기증받았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