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충돌방지법 시행 6개월…새들은 여전히 죽고 있다

입력 2023-12-11 00:01 수정 2023-12-11 00:01
지난 6일 경기 광명시 소하동 인근 방음벽 너머 화단에서 발견된 새 사체. 백재연 기자

경기 광명시 소하동 인근 금하 지하차도와 그 옆 대규모 아파트 단지 사이에는 10m 높이가 넘는 투명 유리 방음벽이 설치돼 있다. 지난 6일 이곳을 직접 찾아 방음벽을 살펴봤다. 약 20m 거리를 걷는 동안 방음벽 벽면에 새가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흔적인 ‘충돌흔’이 7개나 발견됐다.

방음벽 아래 화단에서는 새들의 사체가 발견됐다. 머리는 이미 분해돼 없고 몸통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사체 없이 새 깃털만 곳곳에 흩어져 있는 모습도 다수 볼 수 있었다. 동행한 안성진 조류충돌방지협회 이사는 “길고양이들이 방음벽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 사체를 물고가면서 깃털만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방음벽 인근에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새 깃털의 모습. 백재연 기자

멸종위기종을 포함해 투명한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새들이 많아지자, 지난해 5월 국회는 ‘야생생물 및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시행일은 지난 6월 11일로, 시행된 지 반년이 지났는데도 현재까지 많은 새가 투명창에 부딪혀 죽고 있다. 2018년 국립생태원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투명창에 부딪혀 죽는 새는 연간 800만 마리에 달한다고 한다.

개정안에 새를 보호하기 위한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건축물은 ‘조류 충돌 저감 조치’를 해야 한다. 새들이 투명창을 인식하지 못하고 뚫린 공간이라고 착각하지 않도록 창에 스티커를 붙이는 조치 등이다.

하지만 벌금이나 벌칙 등 처벌 조항이 없어 기관들은 이러한 조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환경운동 시민단체 녹색연합이 지난 6월 서울 25개 구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저감 조치를 시행한 데는 구로·금천·노원구청 3곳뿐이었다.

관악구청 청사의 유리 외벽 모습. 백재연 기자

지난달 8일 관악구청 민원게시판에는 ‘구청 유리창에 충돌해 죽은 조류를 발견했다’는 글이 게시됐다. 구청 작은도서관 입구에 떨어져 있는 새 사체 사진도 함께 첨부돼 있었다. 안 이사는 “메추라기로 보인다”며 “가을에 내려오는 대표적 겨울철새”라고 설명했다. 메추라기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근미래에 보전 상태가 위협에 처할 수 있다는 의미의 ‘준 위협’으로 보전 상태를 정해놓은 새다.

관악구청은 건물 입구 쪽 벽면 전체가 투명 유리로 돼 있는 구조다. 구청 관계자는 “조류가 충돌하는 위치와 발생 횟수를 수시로 파악해 향후 야생 조류 보호에 적극 참고하겠다”고 답변했다.

관악구청처럼 조망권을 확보할 수 있고, 단열효과가 뛰어나 에너지 절약 효과를 볼 수 있는 유리창을 사용하는 게 최근의 추세다. 하지만 투명 유리창으로 지어진 건물은 새들에게는 쥐약이나 마찬가지다. 유리창이 거대한 거울로 작용해 하늘을 비추기 때문이다. 안 이사는 “최근 들어 단열 효과가 좋은 유리로 시공되는 건물이 많아지고 있다”며 “반사성이 일반 유리보다 더 높아 새들에게 위험하다. 지구를 보호하려고 시공한 것이 역설적으로 새들을 더 죽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건축물 투명창 등에 충돌해 죽는 새들은 작은 참새부터 큰 맹금류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멸종위기 야생동물도 예외는 없다. 조류충돌방지협회에 따르면 최근 2달 동안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올빼미와 수리부엉이, 팔색조, 새매, 벌매가 투명창에 충돌해 죽은 채로 발견됐다.

유새미 녹색연합 활동가는 “현재 저감 조치 이행 의무는 공공기관에만 한정돼 있지만, 사실 조류 충돌의 90% 이상이 민간 건축물에서 발생한다”며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건축법에 해당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광명=글·사진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