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저출산에 따른 한국 인구감소가 14세기 흑사병으로 인한 유럽 인구감소를 넘어선다는 내용의 칼럼을 실었다. 이처럼 심각한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에서도 이민 확대 정책이 거론되지만 청년 일자리 잠식, 사회 갈등 확대를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찮다.
우병렬(56) 이민정책연구원장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이제 이민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분들은 거의 없다고 본다”며 “이민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을 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경제 규모와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인구가 절대적으로 뒷받침돼야 하며, 이민은 우리가 받고 싶지 않아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설명이다.
우 원장은 “지난해 한국 합계 출산율인 0.78명은 경제학 교과서에도 안 나오는 기현상”이라며 “출산율 제고 정책이 성공해도 인구구조 변화는 불가피하다. 부족한 부분은 이민을 통해 메꿀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미 지방에서는 일할 사람이 부족해 외국인 노동력이 없으면 농업, 수산업뿐만 아니라 건설업, 제조업 등 분야까지 붕괴될 상태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법무부 산하 이민정책연구원은 2009년 국제이주기구(IOM)와 한국 정부 간 협정으로 설립된 국내 유일의 이민 관련 싱크탱크다. 법무법인 태평양 외국 변호사로 근무하는 우 원장은 지난 11월 제5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91년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했다. 2019년 기재부 경제구조개혁국장 재직 당시 범정부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 출범에 관여한 인구 문제 전문가다.
우 원장은 지난 8일 서울 양천구 이민정책연구원 원장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이민은 ‘시혜’가 아닌 ‘경쟁’의 관점으로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세계 각국이 노동력 부족 문제로 이민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원하는 외국인들을 국내로 유입하기 위해선 한국이 매력적인 나라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 원장은 선진국이 경험했던 이민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외국인을 받는 방법을 잘 연구하는 것이 연구원의 주된 과제라고 했다.
-공직 생활 중 이민 정책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2019년 기재부에서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 출범 업무를 맡았다. 관련 문제를 다뤄보니 출산율 제고 정책으로 마련된 정책들의 효과가 의문스러웠고, 출산 정책이 성공해도 인구구조 변화는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지부터 국방까지 인구 문제와 관련 없는 부처가 사실상 한 곳도 없다. 인구 정책과 관련해 국민에게 다시 한번 봉사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민정책연구원장에 지원하게 됐다.”
-연구원은 어떤 조직인가. 향후 이민청과의 관계는.
“지금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정책의 이론적 뒷받침을 연구원이 하고 있다. 이민청 신설 후에도 정책 연구는 연구원이 뒷받침 해야 한다. 이민청이 제대로 자리 잡고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임기 중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 이민 정책이 왜 필요한가.
“인구 구조상 이민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인구의 절대 숫자가 줄어들면 그 사회는 구조적으로 성장에 제약을 받는다. 지금 0.78명인 출산율을 정부가 최대로 노력해서 1.0명 정도로 올릴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는 국가 유지가 안 된다. 인구 규모를 유지하는 적정 출산율이 2.1인데, 그렇다면 그 격차를 다른 방법으로 메꿔야 한다. 출산 정책도 필요하지만 한계가 있기에 부족한 부분은 결국 이민을 통해서 보완할 수밖에 없다. 그간 이민정책은 노동력 부족 차원에서 접근했는데, 앞으로는 사회가 지속해서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인구 구조 변화에 어떻게 정책적으로 대응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지금이 이민정책을 수행할 골든타임이라는 뜻인가.
“그렇다. 출산 정책도 골든타임이라고 한 지가 벌써 20년이 됐다. 결국 적극적인 대응을 못 하고 지금까지 오지 않았나. 이민 정책도 말로만 골든타임이라고 하고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부터라도 이민을 어떻게 잘 받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민자 때문에 청년 일자리가 위협받는다는 부정적 시선도 있다.
“청년 일자리가 부족한데 외국인이 그 자리를 뺏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일자리는 있는데 일할 사람이 부족한 게 지금의 현실이다. 특히 과거에는 소위 3D 업종에만 노동력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지금은 농업 등 일차 산업뿐만 아니라 건설 제조 서비스 모든 분야에 일손이 부족하다. 지방으로 가면 외국인 노동력이 없으면 경제가 붕괴될 정도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외국인들이 국내에 들어오지 못해 가장 타격을 본 분야가 농업이다. 이민자들이 청년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한다.”
-청년들이 ‘질 좋은 일자리’를 두고 외국인과 경쟁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언어능력이나 경험, 경력 차이로 인해 한국인과 외국인의 자질은 다르고,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경우는 드물다. 외국인 고용은 오히려 없어질 수 있는 국민 일자리를 유지하거나 숙련된 전문 인력이 이민으로 많이 들어오면 오히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 지금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인도 사람들이 점령하지 않았나. 그 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미국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보기보다는 미국에서 새로운 먹거리와 일자리를 더 창출해낸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다고 생각한다.”
-난민 수용 문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리더의 지위에 오르려면 난민에 대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최근 울산이나 제주도에서 아프간 특별기여자나 예멘 인도적체류자들이 정착한 사례가 있는데 큰 부작용 없이 진행되고 있다. 희망적인 것은 젊은 세대가 외국인이나 난민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기성세대와 달리 이민에 대해 거부감이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국민의 공감대가 중요하고, 정부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민자 불법체류자 문제에 대한 우려도 있다.
“불법체류자보다는 체류 기간을 초과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쓰려 한다. 가급적 이 집단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이민정책이 운영되어야 한다. 체류 기간이 지났는데 왜 국내 체류하고 있는지, 또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연구원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체류기간을 초과한 외국인에 대한 대책 마련 시 적법하게 체류 중인 외국인과의 형평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고려해야 할 점이 많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균형과 묘안이 필요하다.”
-이민자들이 국내에서 겪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어느 나라나 이민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이다. 우리 정부는 이민이나 외국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이해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이민자들이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게 한국어 의사소통 능력이기 때문에 이들 대상 한국어 교육 역시 강조하고 있다. 말을 잘해서 사회에 통합되도록 하고, 정착을 돕기 위해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 밖에도 이민자들이 경제활동을 위해 체류의 안정성을 원하고 있어 최근 정부는 인구나 노동력 감소 지역에서의 장기체류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전세계가 인구 문제로 이민 정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민은 이제 국제 경쟁이다. 우리가 시혜적으로 이민을 받겠다고 하면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들어올 것으로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원하는 분들이 우리나라에 오게 하려면 우리나라가 매력적인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일본은 이미 2019년에 이민청과 같은 출입국재류관리청을 만들어 그런 매력도를 높여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이민자들을 많이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은 이민을 고려할 정도로 매력적인 국가인가.
“충분히 매력이 있다. 이민자들이 가려고 하는 나라는 잘사는 나라다. 소득을 창출할 수 있고, 삶의 질을 내가 기대하는 수준에 맞춰줄 수 있는 나라가 경쟁력이 있다. 이민 희망자들이 볼 때 우리나라는 충분히 잘 사는, 생활 수준이 굉장히 높은 매력적인 국가다.”
-지난달 20일 신임 원장으로 취임 후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면담을 했는데, 어떤 대화를 나눴나.
“한 장관은 유럽에서 발생하는 이민 정책 부작용이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중요하게 언급했다. 이를 위해 언어 교육 등 통합을 위한 노력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로 현재 이민과 관련된 정책이 여러 국가 기관에 산재해 있는데 이민청을 출범하면서 각 부처의 정책 기능을 다 가져오기보다 현재와 같이 유지하되, 이민청에선 이를 통합해서 조정하는 조율 기능만 갖추게 하자는 구상을 설명했다. 그렇게 하도록 이민청에 근무하는 조직 구성원들을 해당 부처에서 파견받아 협업체로 운영하자는 아이디어도 말했다.
이는 이민청 출범 초기에 거부감 없이 정부 내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법무부는 그간 이민 정책에서는 소외된 부서였는데 한 장관 취임 후 이민 정책을 우선순위로 놓고 적극적으로 챙기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