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신도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는 동안에도 시장은 냉담한 반응을 이어가고 있다. 수혜 지역인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 아파트 매매가격은 ‘호재’(특별법) 논의가 한창이던 시기에 오히려 낙폭을 키웠다. 여당의 수도권 편입 추진에도 빠진 경기 김포 집값은 전혀 다른 이슈에 튀었다가 금세 하락으로 돌아섰다.
“재건축 쉽게” 호언장담에도 빠진 집값
국민일보가 8일 부동산R114 데이터를 토대로 매매가격 흐름을 살펴본 결과 1기 신도시 집값은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추진된 지난 한 달간 매주 하락하며 약세를 지속했다.올해 9월 하순부터 지난달 10일까지 7주 연속 -0.01%를 유지하던 1기 신도시 아파트 매매가격 주간 변동률은 지난달 17일 -0.02%로 확대됐다. 더불어민주당이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위한 특별법 제정 추진을 선언하고 나흘 뒤다. 민주당 발표 바로 다음 날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 정부 국정과제”라며 맞장구를 쳤음에도 시장은 싸늘했다.
1기 신도시 집값은 특별법안이 국회 소위원회를 통과한 지난달 29일을 포함해 이달 1일까지 3주 연속 0.02%씩 하락했다. 이 정도 낙폭을 2주 이상 끌고 간 건 4주간 -0.02~-0.03% 사이를 오간 올해 6월 23일~7월 14일 이후 처음이다.
4주 만인 지난 8일에는 낙폭이 -0.01%로 축소됐지만 약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특별법안의 최종 관문 통과가 임박한 시기였음에도 시장의 기대감이 크지 않았다는 의미다. 지난 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특별법안은 용적률 상향, 안전진단 면제 등 1기 신도시 노후 아파트에 대한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일산 분당 산본 평촌 줄줄이 낙폭 커져
1기 신도시는 중동을 제외한 나머지 4곳이 매주 돌아가며 큰 폭의 하락을 맞았다. 일산은 지난달 17일 기준 0.06% 내리며 지난 9월 15일(-0.06%)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산본은 지난달 10일 -0.01%에서 17일 -0.03%로 하락폭을 키웠고 24일까지 한 주를 보합으로 넘긴 데 이어 이달 1일 0.6%, 8일 0.4% 하락했다.분당은 지난달 10일 보합에서 17일 하락(-0.01%)으로 돌아선 뒤 이달 8일(-0.01%)까지 4주 연속 내렸다. 지난달 24일에는 종전에 비해 깊은 -0.03%까지 낙폭을 키웠다. 분당이 4주 연속 하락하기도 오랜만이었다. 평촌 집값은 신도시 특별법 추진이 본격화한 기간에도 매주 0.02~0.03%씩 내리는 등 지난 9월 15일부터 이달까지 12주 내내 빠졌다. 현상 유지라도 하는 1기 신도시는 중동이 유일하다. 지난 10월 20일부터 지난주까지 8주 동안 보합을 지켰다.
1기와 달리 2기 신도시는 특별법 추진 전과 마찬가지로 보합세를 유지하면서 시기에 따라 소폭 상승하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특별법 추진이 한창이던 지난달 17일과 24일에도 2기 신도시 6개 지역이 모두 보합으로 잠잠했다. 그 뒤로도 동탄이 이달 1일 0.03%, 8일 0.02% 오르고 광교가 이달 1일 0.02% 상승한 게 전부다.
전세도 보합과 상승을 거듭하는 2기와 달리 1기 신도시는 올해 10월 13일부터 이달 8일까지 9주 연속 하락했다. 지난달 10일부터 이달 1일에는 종전 -0.01%였던 낙폭을 더 키워 매주 0.02~0.03% 내렸다. 지난달 17일에는 일산(-0.09%)과 평촌(-0.06%)이 크게 빠지며 1기 신도시 전체 낙폭을 -0.02%에서 -0.03%로 더 키웠다.
서울 편입, 재건축 완화로도 못 띄우는 시장
정치권이 던진 호재에 시큰둥하기는 김포도 마찬가지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0월 30일 김포를 방문해 “서울 편입을 추진하겠다”고 말한 뒤 떠들썩해진 정치권과 달리 김포 집값은 주간 변동률 기준으로 지난달 10일까지 2주 연속 보합을 기록했고 17일에는 0.02% 하락했다. 시장의 짙은 회의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김포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달 24일 0.05%, 이달 1일 0.03% 오르며 비로소 상승세를 타는가 싶었지만 반등 2주 만인 8일 기준 다시 약세(-0.01%)로 내려앉았다. 지난달 말 김포 집값을 잠시나마 들썩이게 한 요인은 서울 편입 가능성이 아니라 교통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3일 민주당은 서울 지하철 5호선을 김포까지 연장할 때 필요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는 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서울 편입 논의로 김포 등 일부 지역에서 매도 호가가 오르기는 했지만 시장 전반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크지 않아 보인다”며 “일부 지역 및 계층에 한정된 이슈보다는 부진한 거시경제 흐름, 녹록지 않은 대출 여건이 주택 구매력과 의지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1기 신도시 특별법에 대해서는 “호재성 요인으로 볼 수 있지만 실제 법 시행 시점이 내년 3~4월인 만큼 당장 주간 시세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며 “고금리 환경과 건설업 침체 등을 감안하면 단기에 재건축 사업이 탄력을 받기 어렵고 매수심리 진작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