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새벽·휴일근무 거부한 워킹망 채용 거부는 부당”

입력 2023-12-10 10:33 수정 2023-12-10 13:19

사업주가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워킹맘’에게 새벽과 공휴일 근무를 강요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자 채용을 거부한 것은 남녀고용평등법에 어긋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업주에게는 직원의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배려 의무가 있다는 취지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한 도로관리용역업체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승소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사건 당사자인 A씨는 2008년부터 고속도로 영업소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며 어린 두 자녀를 키웠다. 그가 원래 일하던 용역업체는 출산·양육을 배려해 통상 매월 3∼5차례인 오전 6시∼오후 3시의 초번 근무를 면제했다. 또 주휴일과 근로자의날만 휴일로 인정하면서도 일근제 근로자들은 공휴일에 연차휴가를 사용해 쉴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2017년 4월 새로운 용역업체가 들어오고 수습기간을 3개월로 정한 근로계약을 새로 체결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새 업체는 A씨에게 초번·공휴일 근무를 지시했다. A씨가 항의했으나 “공휴일 휴무는 불가하다”고 회신했다. A씨는 불복해 두 달간 초번·공휴일 근무를 하지 않았다.

회사는 A씨의 근태를 이유로 기준 점수 미달이라며 같은 해 6월 채용 거부 의사를 통보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A씨에 대한 회사의 채용 거부를 부당해고로 판정했다. 회사가 불복하면서 소송으로 이어졌고 1심은 A씨의 손을, 2심은 회사의 손을 들었다.

4년 가까운 심리 끝에 대법원은 회사의 채용 거부 통보가 부당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우선 “A씨가 육아기 근로자라는 사정만으로 근로계약과 취업규칙상 인정되는 초번, 공휴일 근무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고 전제했다. 다만 “회사가 육아기 근로자에 대한 일·가정 양립을 위한 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아 채용을 거부했다고 볼 여지가 상당하므로 채용 거부 통보의 합리적 이유, 사회통념상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남녀고용평등법 19조의5는 사업주가 육아기 근로자의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업주에게 소속 근로자에 대한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배려 의무가 인정된다는 것을 최초로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사업주가 부담하는 배려 의무의 구체적 내용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