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휴전을 촉구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 표결에서 나 홀로 거부권을 행사해 외교적 고립상태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동 국가들과 인권단체 등은 미국이 인권을 저버렸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휴전을 촉구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미국이 단독으로 반대표를 던지면서 외교적으로 고립된 미국이 여러 정부와 인권 단체, 구호단체 등의 비판을 받고 있다”고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앞서 미국은 전날 아랍에미리트(UAE)가 제출한 결의안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져 결의안 통과를 막았다. 이날 표결에선 중국과 러시아, 프랑스 등 3개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13개 이사국이 찬성표를 던졌다. 또 다른 상임이사국인 영국은 반대 대신 기권했다. 이에 따라 의결 정족수(9개국)는 충족했지만, 미국이 홀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결의안 통과가 무산됐다.
미국은 결의안이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한 규탄이 없고, 현 상황에서 휴전은 하마스에만 이익이 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아랍계 반발은 거셌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수년 동안 미국을 따라다닐 수치심의 표시”라며 “공격적이고 비윤리적이며, 인도주의적 원칙과 가치에 대한 노골적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은 자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거부권에) 완전히 실망했다. 우리 친구들은 미국이 이 문제에 있어 고립돼 있다는 입장을 재차 표명했다”고 말했다.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도 “휴전을 더러운 말로 보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카타르, 이집트, 요르단, 외무장관들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게 휴전 촉구 결의안 무산에 실망감을 표시하고 이스라엘이 휴전을 수용하도록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라고 촉구했다.
우방국과 인권단체에서도 거센 비판이 나왔다. 니콜라 드 리비에르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는 “테러와의 전쟁과 민간인 보호 사이에 어떤 모순도 없다”며 “안보리가 또 한 번 실패했다”고 말했다. 휴먼라이츠워치 루이스 샤르보노 국장은 “미국이 전쟁범죄의 공모자가 될 위험에 처했다”고 비난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에이브릴 베누아 사무총장도 “미국은 인류에 반하는 표를 던지게 됐다”며 “미국은 거부권으로 가자지구 대학살에 연루되게 됐다”고 비판했다.
미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은 이날 블링컨 국무장관이 이스라엘에 대한 1억650만 달러 규모의 120㎜ 전차용 다목적 고폭탄(MPAT) 1만4000 발 등 군사 장비 판매를 긴급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무기수출통제법(Arms Export Control Act) 긴급 조항 발동을 통해 이뤄졌다. 본래 연방 하원이 심사 중인 사안이지만, 국무부가 의회 승인을 건너뛰는 긴급 조항을 발동해 패스트트랙으로 지원한 것이다.
국무부가 이례적으로 긴급 조항을 발동한 건 민주당 내 진보 인사들의 반대로 심사가 길어질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NYT는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미국 무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의회와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점점 더 분노가 커지고 있음을 행정부 관리들이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