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블랙아웃)을 계기로 재정난을 겪고 있는 한국전력공사의 송·배전망 관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전은 “울산 정전 사고와 재정난은 큰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부채 경감을 위한 투자 축소를 예고한 한전의 자구책이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송·배전망 투자 규모를 줄이거나 미룰 경우 유사한 정전사고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 5월 자구안을 발표하면서 일부 전력 시설의 건설 시기를 연기해 2026년까지 1조3000억원을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한전은 이미 송·배전망 설비 투자 규모를 줄였다. 지난해 송·배전망 투자비는 6조135억원으로 2021년(6조3907)보다 6% 감소했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한전이 경영난에 빠졌어도 노후화된 송·배전 설비를 교체하거나 관리하는 데 돈을 아껴서는 안 된다”며 “국내 전력망을 책임지는 한전은 전력 사고 예방에 가장 큰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여건 내에서 송·배전망 점검과 설비 투자를 최대한으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한전 내부 시스템 재점검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한전이 자구안으로 구조조정을 들고나오면서 직원들의 사기 등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며 “구성원이 흔들릴 수밖에 없고 업무 구멍이 생길 텐데 이런 부분을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연제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도 “한전의 부채로 제대로 된 전력 설비 운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전기요금 정상화를 통해 한전의 경영 상황을 개선하는 것은 전력공급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한 한 부분”이라며 “정치권도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전력설비 확충을 위해서는 요금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최근 정전사고는 늘어나는 추세다. 2018년 507건이던 정전 사고는 지난해 933건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달 14일에는 용인 에버랜드의 롤러코스터 T익스프레스가 갑자기 멈춰서는 아찔한 사고도 발생했다. 여기에 국내 최대 공업도시인 울산에서 대규모 정전(블랙아웃) 사태까지 불거진 것이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7일 긴급 경영진 비상경영회의를 소집해 정전 피해 복구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한전은 울산 옥동변전소의 개폐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지난 6일 오후 정전이 발생했고, 15만5000가구에 약 2시간 동안 전기 공급이 중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당시 한전은 28년째 사용 중인 노후 개폐장치 교체를 위해 2개의 모선 중 1개 모선을 휴전해 보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모선이란 변전소에서 개폐장치를 거쳐 외부로 고전압을 보낼 수 있는 전선이다. 이때 다른 한쪽 모선의 개폐장치가 문제를 일으켰다. 한전은 정확한 원인은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